별을 지키는 개 별을 지키는 개 1
무라카미 다카시 지음 / 비로소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개를 기른지 얼추 20년이 다 되어 간다. 물론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온동네 개들을 주무르고 다니긴 했지만 - 귀여워했다는 뜻입니다 - 내 가족으로 개를 기른 건 한 20년 정도이다. 개를 기르면서 늘 느끼는 건 개들의 시선 끝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라 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스토커처럼 나를 쫓아다니는 녀석들. 그건 내가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조수석에 앉혀 놓으면 - 안전을 위해 이동가방에 넣은 후 안전벨트를 착용시킵니다 - 나만을 쳐다본다. 까무룩 잠에 빠졌다가도 제풀에 놀라 얼른 일어나 나를 지켜보는 선하디 선한 눈망울.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웃겨서 난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 때론 귀찮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생기지만 - 사고를 칠 때 - 대개의 시간은 녀석들의 체온에 난 포근함과 행복감을 동시에 느낀다. 부드러운 털을 만지고 있으면 마음 속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개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간만큼 난 그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신경을 제대로 못써줄 때도 많은데, 녀석들의 눈에는 원망의 빛이라곤 없다. 오히려 내가 아는 척을 해주면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표정으로 격렬한 꼬리 흔들기 신공을 보이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이 있어 난 외롭지 않다.

무라카미 다카시의『별을 지키는 개』에 등장하는 중년의 아저씨와 해피라는 이름의 개 역시 나와 우리 개들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어린 딸이 길거리에서 업어온 녀석이지만 아저씨는 녀석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매일매일 산책을 시킨다. 아저씨의 말버릇은 "고맙게 생각해라"란 것. 아저씨도 참...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면서 꼭 그렇게 아닌 척 하시기는.

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꼭 닮아 있다. 조금 무뚝뚝한 아버지. 그래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별로 없지만 가족들의 의사를 늘 존중하고 가족을 위하는 삶을 살아간다. 대화가 적은 건 아무래도 중년 아저씨의 특징이겠지만, 의외로 개와는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와도 엄마들은 돈 이야기로 시작해서 돈 이야기로 끝나는 대화를 하지, 자식들은 머리 굵으면 인사만 하고 제 방으로 쌩하고 사라지니, 현관앞에서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돌아온 양 반겨주는 개가 귀엽지 않을 수 없겠지. 이런 걸 보면 중년 아빠들의 외로움이 개로 인해 보상받는 건 아닐까 싶다.

이렇듯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가 했지만 아저씨에게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병이 있는 데다, 실직. 그리고 이혼. 딸의 가출. 아저씨에게 남은 건 고작 왜건 한 대와 해피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 밖에 없다. 아저씨는 해피를 데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여행을 한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모든 걸 잃었지만, 아저씨 곁엔 늘 해피가 있었다.

참 신기해. 모든 게 다 없어졌는데. 옆에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행복한걸. (52p)

그러나, 여행 도중 만난 아이에게 지갑을 털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후, 해피에게 갑자기 이상증상이 나타나 아저씨와 해피는 동물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짐을 개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 팔아버린 아저씨는 해피만 있으면 행복하다 했다. 하지만 결국 돈이 다 떨어지게 되고 지병마저 악화되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되는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가 잠든 줄 알고, 언제쯤이나 깨어날까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해피.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간 1년 후, 해피 역시 아저씨의 곁으로 가게 된다.

죽음을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개는 아저씨가 잠든 줄만 알고 깨기만을 기다린다. 동물이라면 본능인 생존욕구가 강할 텐데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녀석을 보니 문득 시부야역 앞에 있는 하치의 동상이 떠오른다. 하치의 반려인 역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하치는 늘 교수님을 기다리던 시부야역으로 향한다. 비록 해피와 하치의 상황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다.

바보같아. 개들은 정말 바보같아. 어쩌면 그렇게 한없는 사랑을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걸까. 나도 우리집 개들을 사랑하지만 내가 주는 사랑에 몇 백배나 되는 사랑을 녀석을은 나에게 전한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그런건 상관없다. 그저 곁에 있는 것으로, 쓰다듬는 한 번의 손길에 행복해 하는 녀석들을 보면 난 늘 고맙고 미안하다. 해피의 아저씨 역시 말버릇은 "고맙게 생각해라"였지만 실제로는 해피에게 고마워란 말을 늘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져 가슴이 짠해지고, 눈물이 핑 돌고,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건 뒤편에 수록된 <해바라기>에서 더욱더 그랬다. 사회복지사 오쿠쓰씨가 등장해 전혀 다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무연고자로 죽음을 맞은 아저씨와 해피의 장례를 치뤄주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해피의 사연을 추적하면서 오쿠쓰씨가 떠올린 추억 속의 개의 이야기를 보면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별로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늘 자신을 지켜주던 녀석. 마지막 순간에도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공을 물고 있던 녀석.

개들은 사람보다 훨씬 작은데, 정말 작은데 어디에 그렇게 큰 마음이, 큰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두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먼저 보낸 네 녀석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그중 첫번째 길렀던 바우는 내가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 4개월밖에 안된 녀석이었는데, 내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전날, 그 힘겨운 몸을 이끌고 내 방으로 찾아왔던 녀석. 그때 내 체온을 나눠졌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지금도 든다. 하지만 후회와 아픔은 곱씹을수록 더욱 커지기만 한다. 그래서 난 지금은 녀석들의 마지막 순간보다 녀석들이 나에게 전해준 행복과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하려 한다. 그래서 미안해라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고마워. 날 사랑해줘서. 날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먼훗날, 우리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날 마중하러 떼지어 달려와 줄 너희들의 모습을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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