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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괴이쩍은 이야기, 즉 요즘으로 말하자면 도시괴담이나 학교괴담 등의 이야기 중 몇퍼센트가 진실한 이야기일까. 그런 이야기를 접해보면 그 진위여부를 가릴 수나 있을까 싶은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만도 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파트에는 괴전화 괴담이 떠돈다. "내 몸이 지글지글 타고 있어"라던가. 솔직히 웃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아파트는 옛 화장터 위에 지어진 곳이다. 그런 전화가 누구에게 온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온 게 맞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실제로 그 아파트의 터가 화장터였으니 죄다 지어낸 말이라고 하긴 어렵다. 화장터였던 곳이었으니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한 무슨무슨 학교는 옛날에 공동묘지였다, 라는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 운동장에서 관뚜껑같은 나무판자가 나왔다고도 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어떻게 보면 학교 괴담의 일종처럼 보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럴수도 있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슨 말이냐고? 인류가 처음 지구에 나타나 살고 죽고를 반복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땅에 묻혀서 어쩌면 우리가 딛고 다니는 땅 거의가 사람이 묻힌 땅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세상에 떠도는 괴이한 이야기가 뜬소문만은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중 괴이한 이야기는 옛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것이 요괴의 소행이나 귀신의 소행으로 여겨진 건 아닐까. 최첨단의 과학력으로 무장한 현대 역시 과학의 힘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들이 여전히 많은데 옛날은 오죽했을까 싶다. 그렇다 보니 뭔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부조리한 일이나 불합리한 일이 생겼을때 그 원한을 돌리기 위한 대상으로 요괴나 귀신의 존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항설백물어』의 두번째 이야기인『속항설백물어』는 요괴나 괴이의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을 이루지만, 전작의 경우 요괴나 괴이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번 작품의 경우 괴이한 일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조망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마타이치 일행과 비슷한 신분인 무숙인등 최하층민의 고달픈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악당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역으로 이용당하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고와이」나 무사 집안의 개망나니 아들에게 의미없는 죽임을 당해도 그 원한을 호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시치닌미사키」역시 같은 맥락으로 짚어볼 수 있다.
병오년생 여자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미신때문에 희생당한 시라기쿠의 이야기가 담긴「히노엔마」를 읽어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지 않나 싶다. 미신이든 속신이든, 이용하는 자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설령 부당한 이유라도 공격한 구실이 된다면 개의치않으리라. (245p - 히노엔마 中)
시치닌미사키편에 등장하는 미사키 고젠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치닌미사키 전설이 옮겨오면서 와전되고, 그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가에데님이 미사키 고젠이 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원성을 돌릴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덤터기를 씌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에 딱 맞는 것이 와전된 전설이었다. 전설은 사람과 함께 이동하는 법이다.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사는 요물이 그 기억을 가진 자와 함께 별개의 장소에서 살아남는 일도 있는 것이다. (650p -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中)
또한 잔머리 모사꾼 어행사 마타이치를 비롯해 그와 같은 길을 가는 일당들의 숨겨진 과거와 원한 등도 밝혀져 더욱 흥미로워졌다.「노뎃포」에서는 신탁자 지헤이,「고와이」는 산묘회 오긴의 숨겨진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오긴의 양부인 등명 고에몬도 실제로 등장해 커다란 역할을 한다. 마타이치의 경우, 젊은 시절의 마타이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해도 극히 적은 정보뿐이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야 마타이치지 싶은 생각도 든다.
이 모든 것을 기술하는 것은 통속작가 야마오카 모모스케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들의 한 판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되어 기기묘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야마오카 모모스케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로 빛과 어둠을 교차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마타이치, 지헤이, 오긴, 고메몬 등은 이미 어둠속에 발을 담그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모모스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때때로 어둠에 발을 담그며 그쪽으로 건너가고픈 충동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모모스케는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모모스케에 있어 마타이치 일행은 아무래도 신비로운 존재로 비칠 수 밖에 없다.
모모스케는 신비한 힘의 개입에 관해서는 몹시 바라기는 하나…… 역시 회의적이다. 잘 풀리는 것도, 나쁘게 풀리는 것도, 모든 것은 우연인 것이다.
그러나 모모스케는 요즘 들어 그 우연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마타이치나 오긴이 깔아둔 함정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우연이고 어디까지가 의도적인 것인지. 옆에서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우연을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괴이이다. (363p - 후나유레이 中)
하지만 역시 마타이치 일행도 인간이다. 아무리 신기한 기술을 가졌다 해도 그건 인간의 능력 내에서의 일이다. 워낙 출중한 한 판을 짜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이들이 인간의 능력을 넘는 기술을 보인다면,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정말 초자연적인 사건이라면 그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작품정도로 남겠지만, 등장인물이나 사건들 모두 현실위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특히 후반부의「히노엔마」,「후나유레이」,「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그리고「노진노히」는 각기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장치로 얽혀 있다. 단편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보자면 각기 기승전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구성은 워낙 치밀해서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이 작가의 능력은 어디가 한계점일까.
개성있는 등장 인물, 괴이 뒤에 숨은 인간의 양면성과 사악함,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마타이치 일당의 암약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특히 괴이의 비밀을 풀어내면서도 또한 그 괴이를 이용하여 그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재주는 비상하다. 그렇다 보니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작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과연 진실을 그대로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숨겨두고 만들어진 진실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이다.
요괴나 신령부류라면 기원하여 진정시킬 수도 있을 것이나,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자칫 잘못하면 생활에 해를 가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괴라고 설명하는 편이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기에 오히려 낫다. (373p- 후나유레이 中)
마타이치가 펼치는 함정 또한 어느 것이나 요괴를 내세운다. 못다한 미련이나 안타까운 마음, 억울함, 분통, 질투, 투기, 슬픔이나 증오까지. 온갖 괴로운 현실이 모두 요괴의 소행으로 마무리되어 원만하게 매듭지어지고 마는, 마타이치의 일은 대부분 그러한 작업이다. (391p- 후나유레이 中)
이 소설의 배경이 에도시대란 것을 감안하고 보자면 굳이 사실을 들춰내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보다 괴이 뒤에 진실은 숨기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타이치 일행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이라기 보다는 악당의 처리와 뒷세계의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상반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죽임을 당해도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분통이 치밀어 오르지만, 이런 것을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주는 마타이치 일행의 활약을 보면서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떤 괴이한 사건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그 모든 것을 벌인 사람밖에 모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