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3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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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家族) : 혈연과 혼인 관계 등으로 한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
식구(食口) :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며 사는 사람.

가족과 식구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위와 같다. 요즘은 가족이란 말의 범위가 부모자식, 형제지간, 친족의 범위를 넘어 이해관계나 뜻을 같이 하여 맺어진 사람등으로 확대되어 같은 회사나 조직에 속한 사람이나 더 넓게는 지구촌 한가족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게 보자면 식구란 말은 참 소박하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란 말이니까.

하지만 요즘은 식구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부모자식간이나 형제자매간에도 학교나 직장생활 등으로 인하여 따로 사는 경우도 많고, 같은 집에 산다해도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먹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10여년 이상을 나가서 살았기 때문에 가족과는 일년에 단 몇차례 한 밥상을 마주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에는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만큼 그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서른한살의 대학교 조교 하루미와 열두살의 사촌동생 쿠루리는 같이 산지 이제 1년 남짓이 되었다. 그동안은 얼굴도 모르고 살았던지라 함께 사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지만 마주앉아 밥을 같이 먹고 도시락을 싸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었다. 사촌동생을 돌보는 것이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가는 하루미와 말 대신 음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쿠루리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친근감 있는 시간으로 채워져간다.

『다카스기家의 도시락』3권은 하루미와 쿠루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하루미의 전공인 지리학과 관련한 필드워크와 세미나, 쿠루리의 학교 생활, 하루미 - 코사카 - 하지메의 본격적인 삼각관계 구도와 더불어 쿠루리의 비밀도 등장한다.

일단 하루미의 전공과 관련한 내용은 세미나와 필드워크, 학회 등이 있다. 세미나에서는 폭포수 맞기를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반찬 하나씩을 준비해 같이 밥을 나눠먹는 장면이 있다. 도시락 반찬이란 것은 혼자 준비하려면 힘깨나 써야할 일이지만 하나씩 준비하면 겹치는 것도 별로 없고 각 가정의 맛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소세지 모양도 각 가정마다 다를테고. 그러고 보면 난 빗금넣은 소세지만 먹어본 듯 한데, 일본은 모양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별별 모양으로 다 만드는 모양이다.

필드워크에서는 헤보밥 만들기란 것이 있었는데, 헤보란 벌의 유충을 뜻한단다. 벌의 유충이라, 그래 벌레다. 나도 어린 시절엔 메뚜기 튀긴 것을 먹은 적이 있지만,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의 일이고 커서는 눈도 안돌렸는데, 벌 유충 밥이라니. 번데기밥을 생각하면 좀 맞아 떨어지려나? 어쨌거나 새로운 걸 알았다. 벌 유충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아, 그렇다고 내가 먹을 건 아니고)

학회의 경우 코사카 논문 발표와 관련있는 에피소드이지만, 흥미로운건 나고야 명물 술이나 나고야 토박이 음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회에 참석한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그런 게 필요한 것이겠지. 그 지방 음식만큼 인상을 남기는 것도 드물테니 말이다.

쿠루리는 여전히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수련회때문이었다. 쿠루리의 성격상 수련회가 마음편하지는 않았겠지만 하루미가 잘못 싸준 도시락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쿠루리의 인기도가 올랐달까. 피곤해하긴 하지만 슬쩍 미소를 보이는 쿠루리의 모습에 나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또한 쿠루리와 미츠루의 야나기바시 중앙시장 견학도 무척 흥미로웠다. 쿠루리를 좋아하는 미츠루의 데이트 신청이긴 했지만 쿠루리 입장에서는 맛있는 참치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였으니 서로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낸 셈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쿠루리가 걱정되어 쿠루리를 몰래 지켜보던 하루미가 좀더 어른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보호자라도 지나친 간섭은 옳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겠지.

코사카와 하루미, 그리고 코사카를 좋아하는 하지메의 이야기를 보자면 코사카는 하루미를 좋아하고 있고, 하루미는 코사카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듯 하다. 하지메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고. 이런 어른들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마음을 손바닥에 올려놓은듯 다 꿰뚫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애들취급만 하고 있고 말이지. 이런 걸 보니 웃음이 피식하고 흘러 나왔다. 어른들은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는줄 알지만 애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니까.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알차게 엮여져 있지만 3권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쿠루리의 출생에 대한 비밀과 하루미가 여전히 가슴 아파하며 마음 속에 담아둔 과거의 일, 그리고 미츠루와 하지메의 관계 개선이다. 하루미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무척 충격적이었겠고, 쿠루리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겠지. 게다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마저 가슴을 계속 짓눌러 왔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 이야기는 쉽게 풀릴 방법이 있었다. 하지메가 고민하던 미츠루와의 관계에 대해 조언해 주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떠올리게 되었으니까.

가족이란, 진정한 가족이란 어떤 식으로 구성되게 되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마음이 아닐까. '이 사람은 내 가족'이라는 걸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피로 이어진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등돌리는 게 흔해빠진 이 세상에 혈연이란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란 마음이 없다면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 놓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한다는 생각보다는 가족이기 때문에 더 아끼고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하루미와 쿠루리, 하지메와 미츠루. 이들은 한 가족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가 진심으로 서로를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이들은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같은 걸 먹는다는 건 하나의 의사(意思)다. 가족을 이어주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는 것. 우리들이 어떻게든 해왔던 것. (93p)

같은 음식을 먹으면 겉모습도 비슷해지고, 성격도 비슷해진다. 결혼한 사람들이 점점 닮아지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쿠루리와 하루미는 함께 밥을 먹게 된 것이 이제 1년 남짓이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위하면서 조금씩 닮아갈 것이다. 이들은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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