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거리나무, 귤 그리고 쥐
마키 루이스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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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이름도 낯익고 그림체도 낯익다 했더니 스모 이야기를 그린『만원관중』의 작가다.『만원관중』이 나온지 한참 전(2009년)이라서 마키 루이스는 누규??라고 잠시 벙쪄있었지. 하여튼 무척 오랜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작품 딱 하나만 번역판으로 나온데다가 그마저도 뒷권이 안나오고 있으니... (도대체 언제쯤 뒷권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요, 작가님.

이 단행본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전 작품에서도 스모란 독특한 소재를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아티스트랄까. 뭐 하여튼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안료와 화구를 취급하는 가게 주인과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등장하는 <플라티나 로즈 블렌드>, <로즈 힙 세리모니> 연작은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미련을 떨쳐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련이란 건 마음속 작용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떨치려고 해도, 만약 떨쳤다 생각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미련을 떨치게 만드는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안료란 것이다. 좋아했던 그 사람에게 줄 선물을, 할머니의 유품을 안료로 만들어 하늘에 날려버림으로써 마음 속 미련을 깨끗이 털어내는 사람들... 마지막 장면쯤은 컬러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문득 든 작품이다.

음악학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제 됐으니까 잘 자> 연작은 서로 라이벌이 됨직한 소년들이 가꾸어가는 작은 사랑 이야기이다. 서로 함께 할 때는 그게 사랑인줄도 몰랐다가 막상 이별이 닥치게 되니 사랑인줄 알았다는 그런 내용이지만 마키 루이스답게 풋풋하게 잘 풀어놓았다. 어쩌면 그 나이 또래에는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라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

표제작인 <굴거리 나무, 귤 그리고 쥐>는 바로 앞에 있는 <초록을 밟으며>와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재혼상대이자 요리연구가인 의붓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장성한 아들의 이야기인데, 이게 어떻게 보면 참으로 비윤리적인 관계가 될 소지가 많은 이야기지만 역시 주인공들이 순박해서 그런지 이야기 자체도 풋풋하기만 하다. 의붓아버지와 의붓아들의 관계는 그 둘을 연결시키는 어머니란 존재가 없으면 그저 남남일 뿐이다. 켄토의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카즈아키가 함께 산 것은 6년, 그리고 켄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7년. 가족으로 살게 된 것은 13년이란 세월이지만 어떻게 보면 켄토의 어머니와 카즈아키가 부부로 산 것보다 켄토와 카즈아키 둘이서 산 것이 벌써 7년으로 더 길다. 물론 사람의 마음과 관련해서는 시간이란 문제가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간을 따지게 되어 버리는 게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아직도 자신과 둘이서 지낸 시간이 더 긴데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듯한 카즈아키를 볼 때 왠지 어머니에게 질투를 해버리는 켄토. 미묘한 관계가 친밀한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이 사랑스러웠던 작품이다.

음. 책표지 날개에 있는 작가 코멘트를 보니 예전 작품들을 묶어서 펴낸 작품집인 듯 하다. 그래서 그런가. 조금 심심한 듯 하면서도 풋풋한 느낌이 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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