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은 사랑으로 진화한다 - 뉴 루비코믹스 606
아니야 유이지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아니야 유이지는 <문신의 남자>란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독특한 그림체와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반했달까. 그래서 그후로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이제서야 데뷔작을 읽게 되었다. 빈말로도 예쁜 그림이라고 할 수 없지만 데뷔작은 그림체가 더 제멋대로다. 그래도 스토리가 좋아서 자꾸 찾게 되는 작가, 바로 아니야 유이지다.

술만 마시면 기억이 뚝! 끊겨 버리는 하네. 하네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누굴 만나든 간에 대충 만났다가 대충 헤어지는 기둥서방로 살아가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여자 입장에선 질리겠지. 그런데도 전혀 반성없이 또다시 신세질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하네는 아직 22살밖에 안된 어린(?) 녀석이다.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세상이 냉혹한 줄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살아가는 하네는 어느날 아침 눈을 떴다가 무서운 현실과 직면하고 만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곳, 그리고 지난 밤의 흔적들. 여기가 도대체 어딘지,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못하는 것은 그놈의 술, 술, 술 때문이다.

술먹고 못된 짓을 당한 것같긴 한데 기억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그런 하네를 데리러 온 수수께끼의 쌍둥이 형제. 이제 죽었구나 싶었지만, 의외로 쌈빡한 전개가!? 수상쩍어 보이는 쌍둥이 형제는 무척이나 좋은 사람들이었고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단 거다. 얼짱 쌍둥이 형 미요시와 짐승남 쌍둥이 동생 료지는 파견사원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네를 그곳에 취직까지 시켜줬던 것이다. 단박에 직장에 살 곳까지 얻게 된 하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제껏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살아오지 못한 하네에게 이건 득템중의 득템이다. 나같으면 이런 놈, 어디가서 처박혀 죽든지 말든지 상관안할텐데, 마음씨 고운 쌍둥이 형제덕분에 인간의 길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게다가 료지는 하네를 무척이나 아껴준다. 물론 미요시도 하네를 잘 대해주긴 하지만, 미요시는 이미.... 어쨌거나 미요시에겐 딱지를 맞았지만 똑같이 생긴 료지는 하네가 무슨 말을 하든 생글생글 웃으며 다 받아준다. 하지만 하네는 그런 료지가 만만해서인지 못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놈의 자슥이,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그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의 경우 대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개체라 볼 수 있다. 하네가 딱 그짝이지. 그래도 자신이 료지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각은 있으니 그래도 개과천선할 여지는 있다는 건가. 또한 술만 먹으면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출장보내는 버릇도 이젠 확실히 고쳐야겠지. 사람이 술을 먹는지 술이 사람을 먹는지 생각해 보면 뭐가 제대로 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술을 끊으면서 그동안 술을 먹고 사라진 기억속에 료지와의 예쁜 추억이 많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중의 다행일지도.

뒷편에 수록된 <래스컬 진화론>은 쌍둥이의 고교시절 이야기이다. 희극이자 비극이었던 료지의 첫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애틋함이 흘러넘친다. 료지는 어쩌면 이런 시간을 겪어 왔기에 지금의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지. 덕분에 하네 역시 어른스러움이 무엇인가를 배워가는 것이겠지.

사랑이란 놈은 때론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때론 퇴화시키기도 한다. 하네의 경우 진화 쪽이 맞다. 성인이지만 속은 어린애였던 하네가 료지와 그 가족들을 만나면서 한층 성숙해져 가니까. 이런 사랑이라면 첫시작은 희극적이라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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