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대의 사랑을 알다
무라카미 사치 지음 / 인디고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감정표현이 서투르다는 건, 다른 말로 바꿔하자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으면서도 퉁퉁거리는 등 속마음과는 다른 행동으로 상대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때문에 다시 상처받고 또다시 감정을 숨기며 삐딱선을 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지도 모른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마음이 여려서 쉽게 상처받는데 그게 자신의 잘못인줄 알면서도 잘 고치지 못하는, 그리고 자신만이 상처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불치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고리를 한번만 확실하게 끊으면 그후로는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건 쉬워진다. 근데 그게 참 어렵단 말이지.

이 단행본에는 여섯커플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커플중 한사람씩은 앞서 말했듯 유난히 감정표현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이 서투른 이들은 어떤 식으로 사랑을 이루어가게 될까.

표제작인 <밤, 그대의 사랑을 알다>는 회사동기간의 이야기이다. 즉 리맨물이란 말씀. (내가 좋아하는 리맨물~~) 표지에 보이듯 겉모습자체로 고지식함을 풀풀 풍기는 미나미는 활발하고 인기많은 키지마와 연애중이다. 늘 다정한 연인인 키지마를 보면서 미나미는 늘 갈등한다. 과거의 연인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던 것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키지마의 다정함에 기대고 싶어하면서도 또다시 과거의 일과 똑같은 일을 겪을까 먼저 두려워하는 미나미. 근데 미나미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키지마와 과거의 그사람은 똑같은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걸 계기로 좀더 발전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혀 현재의 행복마저도 놓친다면 그건 바보중의 상바보다. 다행히 미나미는 바보가 되기 직전에 돌아섰다. 축하하오, 미나미.

양식 레스토랑 '고양이 가게'를 무대로 하는 두편의 이야기는 소꿉친구인 오너와 쉐프의 이야기와 알바생과 그 동급생의 이야기로 나뉘어진다. 고양이 가게란 이름이 붙어있지만 고양이는 없는 가게. 이 가게의 오너 아키라는 무뚝뚝한 인상이라 손님을 내쫓기 일수이지만 다행히 사근사근한 아키라 덕분에 손님은 그럭저럭 있는 편이다. 적자가 나기 일보직전의 가게, 아키라는 가게 회생을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건 바로!!! 오오오, 요즘 내가 모에하는 동물귀! 게다가 고양이귀! 무뚝뚝한 인상의 아키라에겐 어색하게 잘 어울리지만 그게 또 손님을 불러모으는 마네키네코역할을 하게 되었달까. 물론 알바생인 하야카와가 더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알바생 하야카와는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가 있다. 그건 바로 동급생인 이가라시. 이가라시에게만은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이가라시에게 퉁퉁거린다. 이가라시가 자신에게 했던 '멋있다'는 말과 고양이귀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 고양이귀가 이 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계기가 되니 이 또한 좋은지고.

부모님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두 사람이 있다. 나이는 동갑. 근데 사이는 별로 안좋다. 어느날 호마레의 비밀을 엿보고만 히로나리는 왠지 가슴 한구석이 찡해진다. 호마레가 자신의 형인 유키나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법. 형 유키나리가 별안간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역시 틱틱거리는 건 고교생까지만 귀엽다. 다 큰 어른이 퉁퉁거리고 틱틱거리는 건 역시 별로란 걸 이 작품을 보면서 다시금 느꼈달까. 호마레정도 되는 녀석이 툴툴거리니 귀여운거지. 참, 여기에선 호마레와 히로나리의 학교가 달라 교복도 두가지 타입이 나오는데, 역시 난 호마레가 입은 블레이저 타입보단 히로나리의 가쿠란이 더 맘에 든다. 왠지 복고적인 느낌이 나는 검은테 안경에 검은색 머리카락, 그리고 검은색 가쿠란이라뉘!! 이거 참, 가쿠란만 보면 난 정말이지...(쿨럭)

만남 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 신과 사토. 근데 오늘 신이 만난 사토는 만남 사이트의 그 사토가 아니었다. 사람을 착각하게 되어 만나게 된 경우다. 근데 고교생인 신에게는 오히려 이런 만남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 어린 녀석이 일회성 만남이라니... 알고도 모른 척하는 어른과 알고도 아닌척 하는 귀여운 고교생의 달콤상콤한 연애의 시작을 담은 <감미로운 유혹>을 보니 케이크가 급 땡기는구려~~

마지막 작품인 <비를 기다리고 있다>는 고교동창이었지만 한참만에 재회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교시절에 한 번 고백했다가 뻥하고 차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류지는 재회한 츠바키의 모습에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두근거리는 것. 그거, 사실 사람 힘으로는 어떻게 안되는 거잖아? 에휴, 이런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지. 그러나, 이 작품에도 작은 반전이 숨어있으니... 서투른 고백으로 상대에게 오해를 샀던 류지와 서투른 표현으로 류지를 매몰차게 밀어냈던 츠바키.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답게. 알았지?

무라카미 사치의 작품은 뭐랄까, 꽤 담백한 편이라서 좋아하는데 너무 담백해서 싱겁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뭔가 하나만, 조금만 더...라고 말하고 싶어진달까. 그렇다고 나쁘단 건 아니고 아쉽다는 느낌이 많이 남는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도 마찬가지. 조금만 더... 뭔가가 있었으면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서투른 사람들의 풋풋한 감정을 표현한 부분만은 좋다. 설정된 캐릭터에서 좀더 나가면 츤데레가 되겠지만 츤데레까지는 가지 않는 캐릭터도 상콤하다.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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