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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선 - 뉴 루비코믹스 1125
자류 도쿠로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유난히 ~인 척, ~아닌 척 하는 시림들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이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너무 여려서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보고도 못본 척, 듣고도 못들은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건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걸 인정해 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두렵기 때문에.
대학생 몬지는 자신의 일보다는 남의 일을 더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이다. 늘 누군가의 뒤치닥꺼리를 도맡는달까. 특히 연애 문제로 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치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때 마다 몬지를 찾을 정도이다. 늘 치에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몬지. 하지만 그런 치에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은 늘 불편한 몬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치에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머리속으로는 사랑이 아니란 걸 알면서 질질 끌려다니는 그 모습이 자신과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몬지가 만나는 대상은 치바란 녀석으로 몬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늘 대강대강이란 느낌을 준다. 처음엔 치바가 좋아서 만났지만 치바의 태도에 조금씩 상처를 받으면서 자신이 정말 치바를 좋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 몬지. 결국, 아무 의식없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치바에게 한소리를 하고 만다.
치바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나쁜 남자다. 상대와 복잡한 관계가 되는 건 딱 질색이고, 상대의 진심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치바 역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바가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세상 누구나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 하지만 그런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기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몬지는 그걸 깨달았던 것이다.
이 일을 통해 몬지는 좀더 성장한다. 누군가를 배려한다고 했던 행동이 결국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자신만의 세계에서 좀더 넓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치바와의 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았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치에도, 몬지도 자신만의 상처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가 늘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다가올 상처가 두려워 깨닫지 못하면서도 깨달은 척하는 야호선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걸 깨부수는 건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치에가 그랬고, 몬지도 그랬듯이.
뒤에 수록된 <치사량의 사랑을 담아서>는 고교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학원물이다. 무심코 건넨 한마디가, 무심코 보여준 관심이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그 파장이 다시 본인에게로 향하는 걸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원래 학원물이라면 질색하는 1人이건만, 이 작품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귀여워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 되는 순간은 얼마나 애틋하고 설레는 순간일까. 그 모습이 마지막 한장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류 도쿠로의 작품은 처음이다. 표지를 봐도 그다지 내 취향의 그림이 아니라서 망설였었는데 의외로 내 스타일이었달까. 어쩌면 나도 이런 걸 잘 알 것 같은 기분이야 하는 느낌이었달까. 바보같은 몬지, 바보같은 치에를 보면서 사랑스럽다 여기게 되는 건 어쩌면 나도 바보같은 선택으로 바보같은 행동으로 흔들린 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꽤 있을지도, 라는 생각도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