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1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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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가족이긴 하지만, 이제껏 일면식도 없다가 어떤 이유로 인해 같이 살게 된다면? 그것도 서른하나의 반백수 사촌오빠와 12살의 사촌동생이!? 사촌오빠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라면 음, 그럴수도 있지, 라고 곧장 납득해 버리겠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후 혼자 살고 있는 사촌오빠와 사촌동생이라면 뭔가 껄쩍지근한 것이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어색함이랄까. 아마도 그게 가장 크겠지. 게다가 사촌여동생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이니...

『다카스기家의 도시락』은 사고로 엄마(싱글맘)를 잃게 된 12살의 쿠루리가 대학에서 오버닥터로 일하는 31살의 미혼 사촌 오빠인 하스미와 살게 된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쿠루리의 엄마(하스미의 고모)가 하스미를 쿠루리의 후견인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하스미의 부모님이 사고로 동시에 돌아가신후 쿠루리의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던 하스미는 쿠루리에게서 고모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련한 추억들. 하지만 추억은 추억이고, 사촌여동생을 돌보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기만 하다. 어떤 식으로 대해야할지부터가 대략 난감일테니까.

이런 어색하고 어색한 둘 사이를 연결시켜주고 한가족이란 느낌을 주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도시락'이란 것이다. 쿠루리의 엄마가 만들어준 도시락의 맛에 대한 추억은 두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이며 장보기를 도맡아 해왔던 쿠루리는 장보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무척이나 알뜰한 살림꾼이랄까. 비록 말수도 적고 낯가림도 있는 쿠루리지만 도시락을 만들면서, 또 하스미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하스미 또한 갑작스레 후견인이 되어 어색한 것도 잠시, 12살의 사촌동생을 데리고 사는 어색함도 잠시뿐. 곧 쿠루리와의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새로운 가족의 형성과 도시락에 관련된 사연, 그리고 도시락을 만들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비롯해 하스미가 전공하고 있는 지리학에 대한 이야기며, 전학생 쿠루리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 가는 모습들은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또 쿠루리가 엄마와 둘이서 살던 곳을 방문하면서 하스미는 쿠루리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는 부분이라든지, 쿠루리가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많은 부분에 있어 하스미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다. 특히 하스미가 전화하겠단 말을 듣고 전화를 기다리는 부분 - 목욕하러 들어갔다가 전화소리가 안들릴까 전화기를 당겨놓는 장면- 이나 하스미가 무사히 귀가한 걸 보고 살포시 미소짓는 장면에선 미소가 번졌지만,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을 때 깜짝 놀라 엉엉 울어버리는 쿠루리의 모습에 짠해졌다. 엄마를 사고로 잃은 쿠루리였으니까. 그래도 이젠 쿠루리 곁에 하스미가 있어서 다행이야.

도시락, 좀더 넓게 보자면 한가정의 식단이란 그 가정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는 것이다. 가정식이란 것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겉모양은 비슷해 보여도 간을 하거나 재료를 어떻게 배합하느냐는 그 가정의 식단의 고유함을 만들어낸다. 도시락을 보면 그 집 엄마가 음식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맛을 좋아하고, 어떤 조리법을 좋아하는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스미와 쿠루리 역시 쿠루리의 엄마가 만들었던 도시락의 맛을 기억해내고 그것을 재현해나가며 추억을 공유한다. 물론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면서 새로운 조리법을 배워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이 두 사람의 고유한 식단으로 변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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