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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2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걱정이 늘어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세상을 더욱더 많이 알아간다는 의미와도 같으니까. 세상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그저 즐겁기만 했건만, 알게 될 수록 걱정이 늘어나니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도 있지만, 때론 아는 것이 힘이다는 무슨, 개뿔이. 라는 말이 튀어나올 만큼 알고 싶지 않거나 결코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것도 수두룩한게 세상사다. 그 아는 것의 범위를 좁혀서 사랑이란 놈이란 것만으로 따져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을 할 무렵이나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사랑만 하면 무조건 행복해질줄 알았건만, 서른이 되고 서른 중반이 되니 사랑을 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
멋모르고 사랑할 나이가 좋았지, 라는 한숨도 나온다. 이제는 사랑을 하라면 겁부터 덜컥 집어 먹게 되니 말이다. 아니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게 정말 사랑일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답이 안나오는데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쪽에서 '널 사랑해'라고 말을 한다 한들 그게 정말일까, 하는 의심부터 생기니 나이를 먹으면서 의심병 환자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억지로라도 알아가게 되지만 오히려 사랑이란 건 더 모르겠다. 나도 그렇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츠구미도 그렇고, 어쩌면 당신도 그럴지도 모르지.
대형전기회사에서 근무하는 엘리트 사원 츠구미는 30대 중반의 독신녀이다. 일에 치이고 사랑에 치여 한동안 한숨 돌리고 싶어 선택한 시골 할머니댁에서 머무른지 약 1달. 할머니는 이제 안계시지만 츠구미는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 가고 있다. 50대의 대학교수 카이에다 준과 함께. 성인 남녀가 한집에서 살면 무조건 동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들은 하우스 메이트이다. 어쩌다 보니 한지붕 아래에서 살게 된 두 사람은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조금씩 친밀한 관계로 변해간다. 게다가 카이에다 쪽에서 츠구미쪽에 의외로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결국 우란분에 가족들 앞에서 츠구미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한 카이에다. 츠구미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언사에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만난지 한 달 밖에 안되었지, 나이 차이는 열일곱. 게다가 그는 젊은 시절 할머니를 좋아했다? 뭐 이런 이유말고도 츠구미에겐 카이에다에 마음을 쉽게 열 수 없는 그런 이유도 있었으니... 바로 지난 사랑의 아픔이 너무 크단 것이다. 유부남을 만나 마음 고생 심하게 했던지라, 더이상 사랑따위는 하고 싶지 않기도 했겠지.
누군가와 만나 사랑을 하다 헤어지게 된 후 얼마 만큼의 기간을 가져야 다시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몇 개월, 몇 년? 글쎄다. 날짜로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겁이 나도 사랑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으면 새로 시작하는 것이고, 그래도 겁이 나서 물러서고 싶다면 못하는 거지. 자꾸만 멈칫하게 되는 츠구미를 힘껏 끌어당기는 건 카이에다 쪽. 어디에 저런 정열을 감추어 두었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그의 모습이 참 멋지다. 나도 여자인지라 남자쪽이 적극적인 게 좋거든, 아무래도. (이럴 때만 여자가 되는지도... 씁쓸)
어쨌거나 이 둘을 보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안어울릴 수 없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보면 진짜 잘 어울리거든. 마츠리에 갔다가 자전거타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웃었던지. 카이에다의 조수 사이온지가 아무리 수작(?)을 걸어도 반듯하게 그걸 거절하는 카이에다의 모습도 멋졌다. 그래, 희망을 주는 것보단 단칼에 잘라주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가 될 때도 있다. 절대 그쪽엔 마음주지 않을 거면서 마음을 주는 척 해봤자 상처만 받을 뿐이니까. 츠구미에 대해서는 정열로 똘똘 뭉친 카이에다, 하지만 조수인 사이온지에 대해서는 반듯하게 거절하는 카이에다. 이 사람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참 궁금타.
게다가 미아가 된 아이를 돌보는 두 사람을 보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의외로 애들도 잘 돌보는구나 싶어서. 한편 혼자 집을 찾아가겠다고 기차를 탄 아이를 되찾은 후 끌어안는 카이에다의 모습이나 친엄마가 데리러 왔을때 울면서 뛰던 츠구미의 모습이 눈에 아프게 박혔다. 예전엔 아이라면 딱 질색했던 나인데, 이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이가 이쁘게 보인다. 왠지 츠구미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가슴 한 켠이 찡해져 왔다.
우란분의 결혼 선언, 사이온지의 귀여운 훼방, 며칠간의 아이 돌보기, 그리고 수상식에서의 아내 선언까지. 참으로 다망하게 살고 계시는구려, 두 사람.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왔던 한 남자와 앞으로 독신으로 살 거라 생각했던 한 여자.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때로는 마치 20대의 연인들을 보는 듯 하고, 때로는 한껏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을 보고 있는 듯 하게도 느껴진다. 사람들은 결혼하면 다 똑같아져, 라는 말을 하지만 이 둘만큼은 좀더 특별한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