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병 - 뉴 루비코믹스 662
토지츠키 하지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울리지도 않는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하는 일, 문자 알림음과 비슷한 소리가 나면 혹시나 하면서 휴대전화를 한 번 더 쳐다보는 일, 욕실에 있다 전화벨 소리를 들으면 미친 듯이 뛰어나가 혹시 그 사람인가 싶어 반가워하다 반갑지 않은 전화에 실망하는 일, 그리고 길을 걷다 그 사람의 뒷모습과 비슷한 모습의 사람이 걸어가는 걸 보면 혹시 그 사람이지 않을까 하면서 종종 걸음을 치는 일들. 하지만 그런 일은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면? 아마도 지나친 집착에서 비롯된 환상이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토지츠키 하지메의 단편집『 첫사랑의 병』에 수록된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첫사랑의 병>은 오래전에 죽은 첫사랑의 모습을 보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고 이후부터 보게 된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의 모습은 아야세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눈의 이상때문에 환각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해 결국 눈수술을 결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후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될까 싶어 몹시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눈수술을 받은 후 고향으로 돌아간 아야세는 다시금 첫사랑 하기오의 환각을 마주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하기오의 모습을 보며 오랜 시간 간직해온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아야세. 그의 마음을 받아주기라도 하듯 하기오는 아야세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작품은 설정 자체로 굉장히 애틋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대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고백조차 해보지 못한채 끝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야세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비록 환상일지라도 오랜 시간 간직해온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아야세에게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 작품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이 작가 특유의 분위가 물씬 묻어나는 반전이랄까. 어떻게 보면 빵빵하게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이 한순간에 펑하고 터져버리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반전도 나름 괜찮다. 어쩌면 이런 반전이 아야세에겐 더욱 다행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니까.

두번째 작품인 <열차에서 시작되는 미스터리>는 특급열차에서 근무하는 승무원과 미스터리한 손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그 손님의 정체는? 무척이나 유쾌한 작품이었다. 일본인들은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은데 여기에도 역시 철덕들이 등장한다. 신칸센에 대한 토막 지식도 재미를 더해주는 단편.

<여우 신령님>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소재가 등장한다. 바로 요괴. 일본도 민간 신앙이 많이 발달한 나라이다 보니 이런 소재가 무척 많이 등장한다. 특히 여우 신령은 집안의 부를 일으키는 신으로 유부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우가 그 집을 떠나면 그후론 그 집이 기울게 된다는 단점도 있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민간 신앙인 여우 신령과 마지막 여우술사의 이야기. 그리고 갈곳을 잃어버린 늑대 신령의 이야기까지. 무척이나 재미있는 단편이었지만 분량이 적어 아쉬웠던 작품이다.

<삼월 이야기>는 음대에 다니는 선후배의 이야기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노리와 피아노 전공인 와치의 이야기는 푸릇푸릇한 신선함이 느껴진달까. 속표지 그림은 기모노를 입고 있는 두 남자가 나와서 시대물인줄 알았더니 현대물이다. 아, 아쉽다. 하지만 노리의 집이 료칸을 운영하고 있는지라.. 나름 이런 그림이 되었구나 하고 납득해버렸다. 전체적으로 풋풋한 느낌이 물씬 드는 사랑 이야기였다.

<행복한 사람>은 뭐랄까. 어떻게 보면 가장 황당한 결말의 단편이랄까.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몇년만에 불쑥 나타나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면? 나같으면 어떨까. 그때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이런 사람 싫어한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사라질 때는 충분히 납득할 이유를 말해줘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마지막 작품인 <절구>는 쌀을 찧는 절구가 아니라 일본 전통시의 절구(絶句)를 의미한다. 하이쿠 대결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라... 무척이나 재미있는 고백이다. 그 고백을 받는 사람은 깜짝 놀라겠지만 이런 고백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토지츠키 하지메의 작품은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비슷비슷한 소재를 끌어다 쓰는 데도 작가만의 매력을 더한달까. 또한 시원시원한 스토리 전개도 좋다. 끙끙 앓고 질질 끄는 그런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는 것도 좋다. 작가 후기를 보면 작가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아직 난 밝은 작품밖에 읽어본 적이 없어 어두운 작품도 한 번 접해보고 싶다. 도대체 토지츠키 하지메의 다크한 작품은 어떤 느낌을 줄까. 왠지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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