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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자연계는 냉혹하다. 포식자는 늘 포식자이고 피식자는 늘 피식자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식물이 곤충을 잡아 먹기도 하고, 개구리가 뱀을 포식하기도 하며, 거미가 새를 잡아 먹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은 어떤 생물종의 특별한 아종에서 보이는 특성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다 할지라도 이들의 관계는 크게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는 어떨까. 정복하는 자와 정복당하는 자라는 분류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계와는 달리 인간 사회에서의 정복자는 늘 정복자가 아니다. 때로는 정복자였던 자가 피정복자로 바뀌기도 한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사냥꾼이 사냥감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사냥감이 사냥꾼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잘 나가는 헤드헌터 로게르 브론은 헤드헌터로서의 최상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추천한 인재는 단 한 번도 채용심사에서 거부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아내와 멋진 집, 아내 소유의 갤러리 등은 그의 사회적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었으니... 이런 우아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헤드헌터로서 받는 수당은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가 고안한 방법은 면접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소장한 미술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후 그것을 훔쳐내어 장물로 팔아 넘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낮과 밤의 모습이 완벽히 다른 남자 로게르 브론.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 그것은 바로 이번에 면접을 볼 GPS회사 패스파인더의 CEO 후보인 클라스 그레베가 소장한 루벤스의 사라진 명작 '칼리돈의 멧돼지'였던 것이다. 그것만 훔쳐내면 평생을 부유하게 살 수 있다. 마지막 한 탕으로 손을 씻고 아름다운 아내와 일평생 행복에 젖어 살 꿈을 꿨던 로게르의 앞에 드러난 현실은 차라리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싶을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절망감에 잠시 휘청일 시간도 없이 그에게 커다란 위협이 차례차례 다가오기 시작한다.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배신, 공범들의 죽음, 헤드헌터인 자신을 노리는 또다른 헤드헌터(인간 사냥꾼)의 집요한 추적. 로게르는 잠깐의 인연이 있는 여인 로테 마르센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 일이 없다. 책상 앞에 앉아 사람들 면접이나 보면서 사람을 파악하는 일과 몰래 미술품을 빼돌려 장물로 팔아넘기는 일만 하던 그가 인간 사냥꾼을 상대로 위기를 하나씩 돌파해가는 모습을 보는 건 확실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결말이 조금 싱거웠달까. 그점이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후의 반전은 이런 점을 상쇄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한국인 정서상 그런 부분이 잘 납득되지 않기도 하긴 했지만, 북유럽 사람들의 성격엔 좀 음침한 부분이 있으니까, 하면서 대략 납득해 버렸다.
노르웨이 작가인 요 네스뵈의『헤드헌터』는 두 헌터의 싸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감일까. 작품은 반전을 거듭하며 스릴을 안겨준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미국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처럼 선량한 시민이 정부의 음모에 의해 쫓겨다니면서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좀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만나 개고생을 하다가 그 더 나쁜 놈을 무찌르는 과정에 있다. 세상에는 착한 놈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조금 나쁜 놈. 나쁜 놈, 아주 나쁜 놈으로 나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요즘은 북유럽 스릴러가 대세다. 한동안 일본 추리 소설에 올인해 왔던 내가 북유럽 소설에 맛을 들이면서 그 맛에 점차 중독되어 가고 있다. 일당백의 활약이 난무하는 영미소설, 교묘한 트릭이 난무하는 일본소설과 북유럽 소설의 확연한 차이점은 역시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선량한 사람보다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어쩌면 그게 더 현실성이 있기 떄문이 아닐까. 뭐,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