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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여자가 서른 중반이 되도록 애인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따스한 시선보다는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 남자의 경우 서른 중반이 넘어도 혼자라면 일때문에라는 근사한 핑계거리를 달아주면서 말이다. 서른 중반의 애인도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여자는 연애나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 뿐일까, 아니면 안하고 있는 것 뿐일까. 못한다는 말은 주로 타의적인 의미로 쓰지만 때론 못하거나 안하거나 두가지 모두 자의적인 판단에서 나오기도 한다. 지난 사랑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다시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리면 못하는 것이고, 그다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버리면 안하는 것이 되어 버리니까.
삼십대 중반의 도노조 츠구미는 도쿄의 대형전기회사에서 근무하는 엘리트 사원이다. 외모도 괜찮고 회사에서의 능력도 인정받고 싹싹하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츠구미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소심하고 나약하며 겁쟁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시골에서 염색을 업으로 삼고 계시던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츠구미는 할머니에게 별채의 열쇠를 받았다는 50대초반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직업은 대학교수, 이름은 카이에다 준. 할머니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도 여전히 별채에 머무른다. 무뚝뚝하며 직설적이고 신경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린애처럼 장난꾸러기같은 면이 보이기도 하는 카이에다를 보며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한 츠구미였지만 이렇다할 싫은 내색이나 싫은 소리조차 하지 못한채 그와 한지붕 아래에서 지내게 된다.
30대 중반의 여자와 50대 초반의 남자라면 나이차이가 꽤 많다. 내가 지금 30대 중반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충격이었달까. 나같으면 츠구미처럼 나이차이가 많은 남자에게 두근거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50대초반이면 울 아부지랑 몇 살 차이 안나기 때문에 더더욱!) 그치만 츠구미가 전에 사귀었던 사람 역시 유부남이었단 걸 떠올리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역시 인연이란 것으로 포장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의 인연이 있던 남자가 이번에는 그녀의 손녀와 인연을 맺는다, 라. 뭐,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 있겠지.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던 한지붕살이도 몇달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져가고, 도쿄에서 멀리 떠나 시골에서 장기휴가를 보내고 있는 츠구미 역시 시골생활에 익숙해져가기 시작한다. 대도시의 번잡함을 떠나 시골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 것이겠지. 그러면서 지난 사랑의 아픔도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것 같지만, 카이에다가 피우는 담배와 예전의 그가 피우던 담배가 똑같은 브랜드란 걸 떠올리고 마는 츠구미의 마음은 쉬이 열릴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츠구미에게 "연습이다 생각하고 날 상대로 연애라도 해보라고"라는 말을 하는 카이에다의 본심은?
로맨스물은 대개 비슷비슷한 설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여자,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만나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정이 들고 사랑하게 된다, 라는 것이 대부분의 설정인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게다가 20대의 발랄한 여성이 태클을 걸어온다거나 집에서만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일하는 모습이 반짝반짝 눈부시도록 멋지다거나 하는 건 너무 흔하디 흔한 것이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마음에 든 건 이 두사람의 밀당도 재미있었고, 츠구미의 심리 변화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츠구미는 의외로 직접적으로 부딪혀오는 카이에다에게 마음을 열수 있을까.
여자 주인공의 나이가 30대 중반이다 보니 솔직히 남일같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물론 나와 츠구미는 하하나부터 열까지 다르지만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공감아닌 공감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게 몹시도 두렵다.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도 쑥스럽기만 하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싱글라이프가 더 편하고 즐겁기도 하다. 그것을 깨뜨려버리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츠구미 역시 현재 과부하 상태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나처럼 이런 나이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다시 실패했을 때가 너무 두려운 건 아닐까. 이런 츠구미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줄 카이에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역시, 로맨스물은 남자 쪽에서 확 끌어 당겨줘야 그 묘미가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