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양반문학 - 루빌북스
아이반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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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BL시장을 보면 일본만화가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시대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모노에 모에하고, 가쿠란같은 옛날 제복 모습에 모에한다. 우리나라 작품의 경우 시대물이 별로 없어서 과연 내가 우리나라 시대물을 만났을 때 한복에 모에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었다. 한복이란 것이 좀 벙벙한 스타일이라서 섹시미와는 좀 거리가 있다는 게 내 선입관이었기 때문이다. 단아한 맛은 있어도 섹시한 맛은 없지 않을까, 하는 것. 근데 의외로 한복도 은근한 섹시미가 존재하긴 했다. 내가 바란 것 이상은 아니었지만.

아이반의 新 양반문학은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시대물이리가 보다는 약간의 판타지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헤어스타일이나 머리카락 색깔이 저럴 수가 없잖아! 물론 넓게 생각할 때 BL이란 장르 자체가 판타지적 설정을 많이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십오야유희(十五夜遊戱)>와 <항다반애사(恒茶飯愛思)>는 양반댁 자제와 그집 하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 하인들의 이름은 돌쇠와 떡쇠. 푸하핫. 역시 하인들의 이름은 크게 생각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뭐 하인하면 돌쇠가 먼저 생각나는 건 나뿐만이 아닐듯 하지만.
<십오야유희(十五夜遊戱)>의 도련님 정우와 하인 돌쇠의 관계는 상상하는대로. 신분차이도 뛰어 넘었는데 뭐. 그래서 좀 심심한 면이 있긴 하다. 정우의 캐릭터도 딱 상상하던 대로고. 다만 돌쇠에게 밤의 유희에 대해 배워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면이 재미있긴 하다. 그러나 돌쇠는 처음 이미지와는 달리 점점 갈수록 변해간달까. 점점 달달해지는 둘을 보면서 약간 닭살이 돋기도 했다.

<항다반애사(恒茶飯愛思)>의 무열 도령과 하인 떡쇠의 관계는 주종관계 그대로이다. 근데 이 명렬 도령이란 사람이 곱디 고운 외모와는 달리 꽤나 심각한 S타입이란 거. 떡쇠가 워낙 순진한 면이 있어 명렬도령에서 속아 넘어가고 희롱당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떡쇠의 외모로만 본다면 그렇게 당하고만 있다는 게 약간 심기불편해지기도. 난 하극상도 보고 싶었단 말야. 늘 당하기만 하던 떡쇠, 판을 뒤집다. 뭐 이런 거. 그래도 명렬 도령이 변태쪽 캐릭터만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은근히 떡쇠를 많이 챙기는 모습이 참 좋았지.

일단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중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이 두가지이다. 작화면에서 보자면 한복이란 것에 모에할 정도는 안되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이었달까. 그림체가 좀더 안정되고 섬세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후반부에 수록된 <아이가 생겼어요>와 <so beauty>는 현대물이다. 일단 <아이가 생겼어요>란 작품 제목을 보면 혹시 입양이라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 작품은 설정자체가 완전한 판타지이다. 스포일러가 될테지만 설정을 좀 노출시키자면 남자의 임신과 관련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는 건 아니고, 난생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알을 낳지만. (우리나라에 난생설화는 많지만 남자가 알을 낳은 적은 없다.) 근데 남자가 임신하고 알을 낳는다는 설정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주인공의 변화하는 모습이다. 물론 임신시킨 남자인 한가한의 변화가 가장 크다.

이 둘의 캐릭터를 보면 무척 흥미로운데 임신한 쪽은 엄청 건장한 꽃미남이고, 임신시킨 쪽은 여리여리한 체구에 평범한 남자란 거다. 보통 반대로 생각되기 쉽지만 (비엘물에서 보통 공들이 체격이 크고 잘 생겼고, 수들은 여리여리한데다가 여자처럼 생겼다) 여긴 이래저래 반대 설정이 많다. 그게 무척 재미있다는 것. 특히 임신과정이 흥미로웠다. 호오, 그런 식으로도 되는군. 어쨌거나 평범한 인간이라면 남자가 임신한다는 소리를 믿지도 않을거고,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점차 그 사실을 받아들여 가는 한가한의 모습이 참 좋았달까. 역시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인 듯.

마지막 작품인 <so beauty>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짧게 언급하자면 스토커 이야기인데, 이 스토커가 엄청난 추종자란 것. 상대를 보면서 ○○님이라고 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중을 드는데... 역시 이런 건 좀. 난 웬만하면 평등한 관계가 좋기 때문이다. 무슨 신분차이가 있는 시대도 아니고 말이지.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남자가 임신한다는 현대물 판타지, 그리고 스토커의 사랑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新 양반문학>은 일단 우리나라 시대물이란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또한 난생설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의 경우 주인공의 변화모습이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다. 조금씩, 차츰 변해가고 진정한 사랑을 배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마지막 작품이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란 것을 제외하자면 새로운 시도와 설정만으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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