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책제목의 '공포의 보수'란 단어를 보고서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책제목을 떠올렸다. 혹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인가 싶었지만, 땡! 알고 보니 하등 상관없었다. 여기에서의 공포의 보수는 1953년 제작된 이브 몽땅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폭발물을 운반하는 동안 겪게 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그린 영화다. 트럭이 폭발하고, 운반자는 차에 치어 사망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는 영화다 보니 나중에 왜 이 책 제목이 공포의 보수가 되었는지를 알고 나서는 피식 웃음이 났다. 뭐, 폭발물을 싣고 가는 차를 탄 것처럼 그만큼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서웠다는 뜻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비행기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100페이지나 이어졌다. 여행 준비를 비롯해 나리타 공항까지 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개는 비행기가 너무 무섭다는 이야기라서 좀 지겹기는 했다. 도대체 맥주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야!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달까. 그도 그럴 것이 소제목이 영국 · 아일랜드 · 일본 만취 기행이라잖아. 근데 비행기 공포에 취한 이야기가 계속 되니 솔직히 근질근질.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이야기 도중에 여러 작가들의 작품, 티비 드라마, 영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었다. 흐음, 역시 이런 부분은 작가답군, 이런 생각이 들었달까.

이렇게 근질근질한 기분으로 영국 히스로 공항에 상륙. 워털루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면서 영국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근데 술 이야기는 또 별로 없다. 역 구내에서 캔맥주를 샀다거나 펍에 들러 맥주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가끔 나오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영국 맥주는 어떤지 좀 많이 궁금했는데... 그래도 영국의 전원 풍경이나 관광지, 그리고 그런 풍경을 보면서 떠올리는 책이나 영화같은 이야기가 그런 아쉬운 점을 많이 해소시켜 준다. 관광한 곳 중에서 다른 건 몰라도 스톤 헨지는 나도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라 무척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그리고 미술관 관람도 했다는데, 이것도 무척 부러운 것 중의 하나다. 명화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난 주로 도판을 통해 그림을 봐왔던 지라 미술관에 한 번씩 갈 때마다 가슴이 뛰곤 한다. 그치만 미술관 관람이란 게 지방사는 사람에겐 무척이나 수고스러운 일이라서 마음 먹고 서울에 가야 하지만..

아일랜드의 경우, 더블린의 펍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펍들이 어찌나 많은지 손님의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니 정말 아일랜드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니 싶기도 하다. 또한 아일랜드가 배출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중엔 내가 읽어본 작품의 작가들도 나와서 더 반가웠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고향을 직접 가본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일 것 같다.

영국 및 아일랜드 기행 - 대부분은 비행기 공포증과 관광에 관한 이야기 - 가 230페이지 정도 이어지고 나면 드디어 일본 맥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문고판을 내면서 덧붙인 부분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이쪽이 더 흥미로웠다. 일본 맥주하면 역시 아사히, 기린, 삿포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세 종류 밖에 마셔본 적이 없지만... (참고로 아사히 맥주 이야기는 잠시 언급될 뿐 더이상 나오지는 않는다)

기린 맥주 공장이 요코하마에 있었구나. 요코하마면 도쿄와도 무척 가까운 거리인데. 호오. 일본 맥주란 것만 알았지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는데 왠지 득템한 기분이다. 나중에 기린 맥주를 마실 일이 있으면 아는척 좀 해봐야겠다. (笑) 내가 마신 기린 맥주의 느낌은 약간 맥콜맛이 난다는 것이다. 음, 그정도로 탄산맛이 나진 않지만 김빠진 맥콜같달까. 순한 맛과 보리냄새가 좋은 맛으로 기억된다. 어쨌거나 여기에서 기린 맥주가 생산되는 과정도 구경했다니 부러운 기분이 든다. 지금이야 술을 아예 안마시지만 예전엔 다양한 맥주를 마시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좋으시겠어요, 작가님.

그후에 간 곳은 홋카이도에 위치한 삿포로 맥주 공장. 유후~~ 홋카이도에 겨울에 가셨군요. 뭐 생각해보면 홋카이도 하면 눈(雪)이니까 역시 겨울이 좋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홋카이도에서 마시는 삿포로 맥주라. 완전 맛있을 것 같다. 본문 여러 곳에서 언급되지만 그 지방 맥주는 역시 그 지방에 가셔 마셔줘야 제맛이니까. 내가 마셔본 삿포로 맥주는 캔이었는데 톡쏘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안난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는 아사히 맥주를 마셨는데, 본사가 도쿄에 있으니 잘 골랐을지도. 도쿄 여행이었으니까. (푸핫.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삿포로에서는 홋카이도의 명물 음식인 칭기즈칸도 먹었단다. 난 사실 양고기는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게 꽤 맛있다고. 삿포로에서 1박한 후,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오타루. 오타루하면 운하가 먼저 떠오르는데, 겨울의 운하는 어떤 풍경일까. 또한 오타루 눈빛축제도 유명한데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타루에 간 이유도 단지 맥주를 마시러??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참 즐거운 일일듯.

마지막 이야기는 오키나와의 오리온 맥주 이야기이다. 오리온 맥주는 마셔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맛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글로 읽는 맥주맛은... 역시 염장질에 불과했던가. 오키나와는 남국이다 보니 맥주맛도 산뜻하다고 한다. 만약 오키나와 맥주를 홋카이도에서 마시고, 홋카이도 맥주를 오키나와에서 마시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 지역의 기후에 맞춰 맥주맛이 결정된다니 말이다. 실제로 오키나와에서 기린 맥주를 마셨더니 너무나도 무거운 맛이었단다. 그럼 한국에서 일본 맥주를 마시면!? 일본과 비교를 할 수 없으니 아쉽군.

나도 예전에는 - 아주 예전입니다 - 맥주를 참 좋아했다. 특히 다양한 맥주를 맛보는 걸 좋아했다. 내 입맛에는 일본 맥주보다 유럽 맥주 쪽이 더 입맛에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크리미한 거품이 정말 좋은 벨기에 맥주인 호가든, 톡쏘는 맛의 네덜란드 맥주 하이네켄, 하이네켄 다크도 좋고, 아일랜드가 고향인 기네스도 정말 맛있다. 때론 과일맛이 나는 KGB나 크루저도 마셨는데 과일맛이 나는 두가지 맥주는 뉴질랜드 맥주다. 그외에는 칭따오도 꽤나 입맛에 맞았는데, 그건 중국맥주로 정말 알콜이 들어간 맥콜같았던.. 그래도 꽤나 맛있었다. (오래전 기억이라 맛에 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맥주가 확 땡기는 건 아니었지만, 맥주를 즐겨마시던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미각이란 건 후각과 더불어 더욱 오랜 기억이 남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 마셨던 맥주 맛을 떠올리는 걸 보니 말이다.

멋진 미스터리 작품을 써왔던 작가의 첫번째 기행 에세이. 미스터리 작품보다는 조금 덜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의 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된 책이다. 아마도 이런 건 에세이에서만 드러나는 모습일텐데, 온다 리쿠에게 의외로 유머러스한 면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편하게 툭툭 던지는 이야기인데, 그런 것이 깨알같은 재미로 다가온다. 이런 건 일본식 유머 코드라고 해야 될 듯 하다. 이 일본식 유머가 익숙해지면 꽤나 재미있어지는데, 그녀의 미스터리 작품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분위기만 생각하고 읽었다가는 이 책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독자도 나올 듯한 기분이 좀 들기는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