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을 바라보다 - 우리가 모르는 고래의 삶
엘린 켈지 지음, 황근하 옮김 / 양철북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바다 그림을 그릴 때를 생각해보면, 다들 쨍쨍 내리쪼이는 태양, 푸른색이 넘실대는 바닷물을 배경으로 그리고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수초, 바위, 불가사리, 문어를 바닷속에 그려놓고, 수평선에는 늘 고래를 그려넣었을 것이다. 고래의 경우 2/3쯤은 물에 잠겨 머리위로 분수를 뿜어내는 모습이 정형화된 고래 그림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바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대개 이런 식으로 바다 그림을 그렸다. 물고기나 문어, 불가사리같은 경우는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어 그렇게 그렸다고 생각해도, 고래가 그렇게 물을 뿜는 장면을 한번도 보지도 않았는데 늘 그렇게 그렸다. 물론 상상의 모습은 아니다. 동물 도감이나 티비에서 방영되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늘 고래가 머리위로 분수처럼 물을 뿜어 올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렇듯 티비에서 본 모습이나 동물 도감에서 본 모습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좀더 추가하자면 동물원에서 쇼를 하는 돌고래나 영화에 등장해 사람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범고래의 모습이 전부이다.
 
내가 고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육지와 바다 모두 합쳐 가장 큰 포유류란 것, 꼬리가 수직으로 뻗어나온 상어와는 달리 고래의 꼬리는 수평으로 뻗어 있다는 것, 포경산업으로 인해 수많은 고래가 학살당했지만, 지금은 보존차원에서 많은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전설처럼 들리는 고래의 노래나 고래의 무덤 같은 것 정도다. 즉, 우리가 아는 고래란 바다 그림을 그릴 때 1/3 정도만 나오는 고래의 몸과 그때 고래가 분기공에서 뿜어내는 분수같은 물줄기 정도 밖에 없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래에 대해 마치 많은 것을 아는 듯이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엘린 켈지의『거인을 바라보다』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고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으로 고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고래 보호 정책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래의 생태와 습성은 어떠한지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책이라 할 수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환경운동가, 생물학자인 저자가 바라보는 고래의 삶과 각각의 연구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바라보는 고래의 삶과 해양생태계 전반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고찰은 우리가 얼마나 고래에 대해 무지했는지, 해양생태계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려준다. 

고래는 그 큰 덩치만큼이나 활동하는 영역이 넓기 때문에, 그리고 물밖에 나오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태학자나 생물학자들이 연구하기 어려운 대상 중의 하나이다. 실제로 고래가 어떤 식으로 교미를 하고 언제 어디에서 새끼를 낳는지조차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어디에서 섭식활동을 하는지, 일년에 얼마나 이동을 하는지, 수명은 얼마나 되는지 등의 기본 연구도 거의 진전이 없다. 이는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근처로 올라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개 깊은 바닷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향유고래같은 경우에는 심해에서 먹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이 따라들어가서 그들을 연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육지 동물같은 경우에는 일정한 영역이 있기에 이동경로, 섭식활동, 평균수명, 교미와 출산 등 기본적인 연구가 쉬운 편이지만 바다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더욱 힘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래 연구는 아직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수준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서 고래의 생태가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략 80여종의 고래의 생태는 한 종의 고래조차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만 해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이 많다. 예를 들자면 똑같은 범고래 종류라도 사는 곳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개체군은 이주성, 어떤 개체군은 상주성 등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갈라파고스 군도에 사는 다양한 핀치들 같다고나 할까. 핀치가 섭식활동에 의해 서로 다른 핀치로 진화해 갔듯이 고래 역시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면서 그 환경에 따라 진화하고 있으며, 각 개체군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가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고래의 무리는 코끼리의 무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암컷 우두머리 코끼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모계사회이다. 할머니 코끼리 - 엄마 코끼리 - 이모 코끼리 - 아기 코끼리 등으로 구성된 무리는 암컷 우두머리의 지혜와 경험이 생존의 관건이 된다. 고래의 경우에도 이런 습성을 볼 수 있었는데, 엄마 고래가 먹이활동을 하러 잠수를 하면 할머니 고래가 아기 고래를 돌봐주기도 한다. 동물들은 대개 자신의 새끼가 아닐 경우 거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래의 경우 무리간의 유대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대관계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인간이 상아를 얻기 위해 경험많고 지혜로운 어른 코끼리를 죽이는 것처럼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한 포경산업으로 인해 거대한 고래들이 학살당해왔다. 지금은 포경 산업이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있지만, 해저 송유관, 해저 석유 굴착 사업, 수중음파를 이용한 군사 훈련, 어선과 관광선 등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임을 당하는 고래가 여전히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참치를 잡기 위한 선박은 쇠돌고래를 몰아 참치를 잡는데, 이 참치잡이때문에 희생되는 쇠돌고래도 많다. 어선에 쫓기다가 어미와 떨어진 아기 쇠돌고래는 혼자서 살아남지 못한다. 수유중인 어미가 희생된다는 것은 종족보존을 할 수 있는 가임기의 암컷들이 죽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단순히 지금 어미와 아기 쇠돌고래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쇠돌고래들 역시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런 문제로 인해 돌고래 보호 참치 마크가 그려진 참치가 등장했으나, 실제로 참치몰이를 하면서 쇠돌고래가 얼마나 희생되는지를 어선에서 보고하지 않으면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절대 알 수 없는 것도 문제이다. 그건 쇠돌고래 보호를 위한 정책이 발효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쇠돌고래의 수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참치잡이에 희생되는 쇠돌고래 문제외에도 또다른 돌고래 학살이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래 고기를 먹는 나라이기 때문에 불법포경이 끊이지 않는 문제가 되고 있다. 예전에 티비에서 일본의 불법포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의 대학살이었다. 죽임을 당하는 건 대부분이 돌고래였으며, 그 돌고래의 피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피바다라는 표현이 그냥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일본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일본은 수산물 소비가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특히 참치나 고래 고기에 대해서는 속된 말로 환장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다랑어와 고래가 희생되고 있다. 그 결과 예전에 포획된 다랑어는 500kg에 달했지만, 지금은 100kg이 겨우 넘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더이상 큰 개체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큰 개체들을 차례차례 멸종시켜왔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다랑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샥스핀때문에 상어 개체수는 급감했고, 제대로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낚시란 이유로 새치들이 거의 멸종단계에 와있다. 고래 역시 포경산업으로 인해 거의 멸종위기에 이르렀으며 그후 보호를 받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어떤 고래 종류는 겨우 123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야생상태에서는 적어도 5,000마리 이상은 되어야 미래가 보장된다고 가정한다면, 겨우 1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고래종류는 언제 멸종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해양생태계는 무한한 자원이 잠들어 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이 필요 이상의 포획을 해왔기 때문에 향후 2~30년내에는 모든 어족자원이 준멸종상태에 들어간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솔직히 두렵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도 아니요, 지구를 대표하는 유일한 생명체도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이 마치 지구의 지배자인양 지구를 학살해왔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종들이 자연스러운 멸종 과정을 밟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인간의 개입은 자연스러운 멸종이 아닌 인위적인 멸종상태를 야기했다. 고래도 인간이 인위적으로 멸종시켜가는 생명 중의 하나이다. 포경산업이 있기 전에 이 넓은 바다에 몇 종의 고래가 얼마나 존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포경산업이 금지되고 고래가 보호를 받기 시작한 이후 고래가 조금 늘었다고 해서 멸종의 위험을 벗어났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인을 바라보다』는 우리가 모르는 고래의 비밀스러운 삶과 고래와 관련한 해양생태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얼마나 큰 위협을 받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지금처럼 공존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개발에만 집중하면서 생겨나는 제문제들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는 고래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해양생물을 더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멸종된 수많은 생물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인간의 욕심과 오만과 자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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