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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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이 저마다의 우아한 포즈로 앉아있는 표지 그림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어쩌면 저렇게 편안해 보일까. 아름다운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난다. 이 셋 중에 마들렌 여사를 가려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마들렌 색깔과 무늬를 찾으면 되니까. 문득 책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보드라운 털을 만지고 싶어진다. 말랑말랑한 젤리를 주물러 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느낌이 나는 책이다.


이야기는 고양이들의 아침 집회로 시작된다. 주택가에 있는 빈공터에 매일 아침 모여드는 고양이들. 그 가운데에 마들렌 여사가 있다. 마들렌 여사는 가노코네 집에 사는 고양이로 이 마을에 사는 고양이중 유일하게 외국어를 할줄 아는 우아한 고양이이다. 고양이가 외국어를?? 그럼 외국에서 온 고양이인가 싶겠지만, 마들렌 여사는 외국에서 살지도 않았고, 외국 품종의 고양이도 아니다. 그럼 무슨 외국어? 마들렌 여사는 인간과 개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의 경우 모든 개들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인 시바견 겐자부로의 말만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고양이들은 매일 아침 집회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 가족에 대한 불평이며, 최근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떤다. 집회에 참가하는 고양이들은 마들렌 여사를 비롯해, 최고령의 치매끼가 약간 있는 캔디, 줄무늬 고양이 와산본, 삼색 고양이 미켈란젤로 등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새침하게 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이가 좋다. 서로를 걱정해주기도 하고, 서로를 격려해주기도 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작은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고양이만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이야기는 고양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와 개,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이다. 마들렌이 살고 있는 집에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꼬맹이가 하나 있다. 이름은 가노코로 기운이 넘치는 아이이다.

우연히 학교에 일찍 가게 된 어느 날 가노코는 한반 친구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한다. 엄지 손가락을 콧구멍에 넣고 팔락대는 행동이 신기했던 가노코는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졌다. 그 아이의 이름은 스즈로 둘은 금세 친구가 된다. 함께 '코 나부나부'도 하고 다회도 열고. 하지만 둘사이가 조금 멀어진 시기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노코가 찻기둥을 세우는 대신 화장실에서 *기둥을 세운 날부터였다. 그후 스즈는 가노코를 멀리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도 *기둥을 세울 날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답다, 랄까. 그러면서 미술시간에 똑같이 그 장면을 그리는 가노코와 스즈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가노코와 스즈는 함께 *기둥을 세운 친구로 '문경지우'가 된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여름 방학이 끝난 후 스즈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가노코에게 첫 이별이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든 남아 있는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가노코였지만 이상하게도 일이 꼬여 스즈를 만날 수가 없다. 조금은 풀죽어 있던 가노코는 축제장에 갔다가 아빠와 함께 축제를 찾은 스즈를 만나게 된다. 둘은 축제장을 돌아 다니면서 남은 시간을 만끽한다. 그리고 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이별은 슬프지만, 추억은 영원하니까.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으니까 둘은 최대한 담담하게 헤어지자고 하지만, 가노코는 아직 아이이다. 스즈 앞에서 꾹 참았던 눈물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펑펑 쏟아내고 만다.


겐자부로는 올해 13살의 시바견으로 가노코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살아왔다. 지난 여름 비가 심하게 쏟아지던 날 겐자부로의 집에서 비를 피하게 된 마들렌 여사는 그후로 이 집에서 살며 마들렌이란 이름도 얻었다. 겐자부로와 마들렌이 서로 정답게 이야기도 나누며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따스해져 온다. 특히 겐자부로의 마지막날 밤에 나누던 이야기는 눈물이 또르르 맺히게 한다.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시간은 짧지만, 마들렌 옆에서 눈을 감고 싶어한 겐자부로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겐자부로의 죽음은 마들렌뿐만 아니라 가노코의 가족에게도 큰 슬픔이었다. 가노코의 경우 짧은 시간에 두 번의 이별을 경험하지만,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같으면 겐자부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후 마들렌을 붙잡고 놔주지 않으려 했겠지만, 가노코는 마들렌이 그것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준다. 어찌나 대견스러운지. 가노코가 겪은 이별은 분명 슬픈 일이었지만, 가노코는 그것보다 만남의 기쁨과 지나온 시간의 행복한 추억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우정, 만남과 이별, 사이좋은 개와 고양이, 고양이 집회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판타지적 요소를 첨가해 더욱 따스하고 예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건 바로 쌍꼬리 고양이(네코마타)와 고양이의 보은에 관한 내용이다. 마들렌의 남편 겐자부로가 마들렌에게 쌍꼬리 고양이 이야기를 해준 후 마들렌 여사의 꼬리가 두갈래가 된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길가로 나간 마들렌 여사는 처음 만난 인간 여자와 몸이 뒤바뀐다. 하루동안 인간이 된 마들렌 여사는 가노코에게 겐자부로의 사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겐자부로를 위한 고기를 사온다. 남편에 대한 이 행동이 마들렌 여사의 첫번째 보은이다.

두번째 보은은 자칫 스즈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할뻔 한 가나코를 위해 마들렌 여사가 또다시 쌍꼬리 고양이로 변신해서 스즈의 아빠와 몸을 바꾼 후 스즈를 데리고 축제장에 가 스즈와 가나코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거두어 주고 겐자부로의 사료에 신경을 써준 가노코에 대한 보은이라 할 수 있다.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는 고양이 배처럼 말랑말랑하며 포근하고, 고양이의 눈처럼 반짝이며, 고양이의 꼬리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소설책이다. 물론 아픈 이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별의 아픔보다는 만남의 기쁨과 함께 나눈 추억의 소중함을 더욱 귀하게 여기라 말한다. 가노코의 앞니가 빠질 때 즈음이 되어 간질간질하면서도 뭉근한 아픔, 그리고 막상 이가 빠졌을 때의 텅빈 공간의 허전함 대신 새로 나오는 이의 존재에 작은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7p, 123p,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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