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오래전의 일이지만 처음『기생수』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놀라웠던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이와아키 히로키의 초기 단편집을 만나게 되었다.『기생수』의 감각을 떠올린고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작품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단편집이라 할 수 있다. 

<쓰레기의 바다>는 바닷가에 위치한 자살바위와 그 자살바위에서 떨어진 사람의 사체를 수습하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맑고 깨끗하고 푸른 바다에 떨어질 거라 생각하며 자살하는 사람은 대개 바다에 떨어지지 못하고 바위에 부딪혀 죽는다. 그 사체를 매일 수습하며 다시 깨끗한 바다를 만드려는 소녀의 마음은 이미 황폐해져 있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소녀가 동경하던 도시의 빌딩위에서 본 도시의 바다는 쓰레기로 가득한 바다였다. 아무리 치워도 깨끗해질 수 없는, 누군가 쓰레기를 보태도 더 더러워질 것도 없는 그런 바다였다.   

<미완>은 자신의 몸을 단순한 고깃덩이리라 여기는 한 여대생과 그녀의 조각상을 만드는 조각가의 이야기이다. 이 여대생은 낙태 수술을 잘못 받아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룬다. 마치 생명을 잃어버린 고깃덩어리처럼. 이런 그녀의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는 그녀의 아픔과 진실을 꿰뚫어 보게 된다. 그후 그가 만든 건, 살아 숨쉬는 듯한 조각이었다. 어쩌면 그 조각으로 그녀는 치유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난입으로 조각상은 부서져 버린다. 사랑한다면서 그녀를 다시 한 번 망가뜨리는 그 남학생의 모습은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의 몸에만 관심이 있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바 없었다. 그런 일을 겪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란 걸 확인받았기 때문인지 이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생기없는 그녀의 몸과 눈에서 생기를 찾아낸 조각가가 돌에서 또다른 생명을 찾기 위해 돌을 쪼는 것처럼.

<살인의 꿈>은 누군가의 살인 현장을 꿈에서 목격하는 하라다와 하라다의 친구 마유미의 이야기이다. 마유미는 하라다의 꿈 이야기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지만, 하라다의 입장에선 그게 달갑지 않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그 현장이 너무 생생했고, 그것이 현실로 일어나기까지 하니까. 하라다는 결국 마유미에게 화를 내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마의 마수는 마유미에게까지 뻗어 왔다. 마유미의 죽음 이후, 연쇄 살인범은 하라다를 노리게 되는데... 단편이라 살인범이 어떻게 죗가를 치르는가에 대한 부분이 너무 급하게 마무리되지만, 그후 하라다가 꿈에서 본 장면은 더이상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아니었다. 마유미가 죽은 자의 세상에서 보여준 밝은 빛으로 가득한 세상은 하라다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줄 것이다.
 
<반지의 날>은 평범한 가족 가운데에서 유난히 튀는 존재인 불량한 여동생 히로코의 이야기이다. 언니 유미는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이런 히로코가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히로코는 언니에 대한 반발심에 언니가 받은 반지를 가지고 집을 나가버린다. 그저 하루만 즐겁게 보내고자 한 것이었는데, 강에 빠진 개를 구해주다 그만 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반지는 보이지 않고... 히로코는 사실 언니를 미워하는 것도 가족을 멀리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해 심술을 내는 것 뿐이다. 히로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떠올린 가족들의 모습은 히로코가 지키고 싶은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와다야마>는 고교동창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고교 시절의 문제아 와다야마만 불참한 상태이다. 고교시절의 와다야마는 덩치도 크고 늘 잠만 잤지만 스위치기 들어가면 매직을 들고 사람들 얼굴에 낙서를 해대는 통에 곤란을 겪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와다야마의 불참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들뜬 기분도 잠시. 갑자기 흉흉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와다야마의 장난이 부활한다.

표제작인 <뼈의 소리>는 미술을 전공하는 한 여학생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이야기이다. 카오리는 늘 혼자 다니며 뼈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카무라는 그녀의 눈빛이 섬뜩하면서도 자꾸만 끌리게 된다.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의 자살이후 이상하게 변해버렸다는 그녀는 눈에 생기가 없다. 어쩌면 뼈 그림에 집착하는 이유도,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불량한 남자를 사귀는 것도 그런 것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앞에 나온 <미완>의 여학생과 비슷하다. 둘다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완>에서는 조각가가 여학생의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면, <뼈의 소리>에서는 나카무라가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 황량한 벌판에 있는 두개골 그림에 털이 포실포실한 강아지 그림이 덧붙여진 건 아마도 그런 이유때문이겠지.

6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인물이 되기도 하고, 또다른 타인에 의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선 파괴적인 존재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다른 이를 치유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되기도 한다. 파괴적인 인간이 되든지, 치유의 존재가 되든지. 결국 그건 본인에게 달려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숨겨 놓고 보여주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했고, 자꾸만『기생수』와 비교하다 보니 재미가 없게만 느껴졌다. 또한 단편이 6편이나 되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급박하게 전개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작가가 완전하게 드러내지 않은 부분의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짚어가다 보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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