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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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작품인『카시오페아 공주』에 다소 실망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책 소개를 보면서 미스터리라는 설정에 끌렸고, 그래서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손에 잡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별로였다. 나와는 코드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결국 한숨이 흘러나왔다.
 
유명 가수이자 영화배우였던 서연희가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현우주는 고교시절 짝사랑했던 연희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워낙 유명한 연예인이었던만큼 매체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현우주는 연희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왜 투신자살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그녀의 남편이자 고교 동창인 박대웅을 의심한다. 하지만 당시 박대웅은 미국에 있었다. 그럼 정말 연희는 자살한 것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서연희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CCTV화면이 공개되었고, 그 화면에 연희와 같이 있는 인물은 박대웅으로 추정된다는 뉴스가 떴다. 그럼 그 시간에 박대웅은 정말 한국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박대웅을 닮은 사람에 불과한 것일까? 현우주는 연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고자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기본 스토리는 현우주가 서연희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과정에 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곁가지가 너무 많다. 그 곁가지 하나는 고교시절의 이야기이다. 현우주가 박대웅을 비롯한 밴드 멤버들을 어떻게 만났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 정해진 길만 걸어가면 성공할 수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전교 석차가 떨어지면 서울대에 못가고 연고대에 가게 되는 걸 고민하고, 한달에 백만원이나 하는 고액과외를 받고 입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밴드를 조직해서 연주를 하고 공연을 한다. 그후엔 서민적인 분위기가 나는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는다. 만나는 여자아이들은 유명 여고의 아이들로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이른바 엄친딸들이다. 그 여자아이 중 하나가 서연희였다. 현우주는 서연희를 좋아했지만 박대웅과 연희가 사귄다는 걸 알고 속으로 마음을 끓일 뿐이다.

이후 대학에 들어간 박대웅은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대웅은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인간이다. 야망으로 가득찬 남자랄까. 현우주는 신방과에 진학, 특별할 것 없는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늘 박대웅에 대한 열패감에 휩싸여 있었다. 스무살이 되어 연예계에 진출한 연희는 박대웅과 결혼, 현우주의 손에서 더더욱 멀어진 존재가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현재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박대웅에 대한 자격지심과 연희에 대한 그리움이 현우주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 것이다.

두번째 곁가지는 음악 이야기와 연예계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목차는 모두 노래 제목으로 내가 고교시절에 좋아하던 헤비메탈 밴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즐겁긴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음악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이라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음악 이야기 뿐이랴. 현우주가 갖춘 오디오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도 주구장창 끊이지 않는다. 뭐, 자랑질 좀 하고 싶나,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방송국 PD로 일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오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박대웅이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어떻게 차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또한 박대웅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속한 아이돌 그룹 리더들의 열애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섹스 비디오 스캔들에 대해 조금 언급하지만 딱히 그럴듯한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진짜 섹스 비디오 스캔들로 한때 힘들어 했던 두 여자 연예인의 이름을 실명 그대로 언급하는 부분이 불쾌했다. 그 비디오는 연인과 찍은 것이었으며, 이는 사생활의 일부로 원래는 지켜져야할 부분이었다. 작가가 정말 연예계의 더러운 부분을 다루고 싶었으면 장자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상납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 소설에도 그런 언급이 나오지만 알고 보니 노래 연습때문이었다고 급하게 끝맺는다)

현우주 개인의 삶에 대한 부분은 술과 섹스가 대부분의 이야기이다. 술마시는 장면도 꽤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위스키고 와인이다. 술에 대한 설명도 그렇게 자세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여자 이야기에선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는 알고 보니 유부녀였고, 고교시절엔 누굴 사귀고, 대학시절은 누굴 사귀고... 등등이 나오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읽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도대체 서연희 미스터리에 있어서 현우주의 성생활이 그토록 자주 언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오히려 잡지사 기자로 일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많았으면 이해라도 되겠지만, 잡지사 일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서연희 미스터리와 관련해서 아이돌 그룹 리더인 남태범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스포츠 신문 여기자와의 만남 정도가 전부다. 그 여기자의 이야기도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남태범이 그룹 탈퇴후 여기자에게 남긴 이야기는 도대체 왜? 라는 생각만 든달까. 물론 제대로 된 소스로 기사를 쓰란 그런 의미였겠지만, 그런 건 대수롭잖게 넘어가버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따지고 보면 이 곁가지들이 소설 내용의 3/4를 차지한다. 결국 서연희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현우주의 조사와 관련된 내용은 1/4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300페이지 좀 넘는 책에서 3/4을 추려내면 100페이지도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곁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은 대충 넘어간 경향이 보이고, 결말 부분 또한 너무 성급하게 진행되었다. 결말을 보면서 뜨아~~했달까. 인간미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던 박대웅이 알고 보니 순정파 남자였다는 결론이 나오고 마는 것이다. 허허참, 이런 괴리감이라니, 이런 위화감이라니.   

가장 어질했던 건 작가 후기를 읽을 때였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작가 자신이 만족한다고 독자를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내 경우가 딱 그렇다. 작가는 이 작품이 스릴러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스릴은 하나도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현우주가 밴쿠버에서 납치되었을 때 정도인데, 그 장면도 너무 싱겁게 끝났다. 이 정도로 스릴러라고 하는 작가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평탄하고 무난하고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 와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뭐, 본문에도 나와 있는 "경제적 ·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아버지와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갈 성적이 유지되고, 마음만 먹으면 여자 친구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 (…) 그 또래 아이들이 가질 법한 태생적인 결핍에 대한 불만과 불안은 우리가 져야 할 짐이 아니었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봐서는 작가가 꼭 이런 길을 걸어온 듯 하다. 이러니 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스릴이라고 하지 않겠나.

강남부촌의 아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짜증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런 환경의 아이들일지라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이 뭘 고민했지? 짝사랑? 서울대를 못가고 연고대에 가는 것? 고민다운 고민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나와 같은 사람과는 태생부터 달라서 이런 고민이 엄청 큰 고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은 못하겠다. 또한 곁가지 비중이 너무 높은 것도 이 소설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지나치게 세세한 음악 이야기나 술 이야기 등은 후까시 잡는 걸로 밖에 안보인다.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압구정 아이들의 힘이 빡 들어간 어깨를 보는 기분이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부분을 충분히 살렸다면 멋진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표현은 여전히 특권 계급 의식에 사로 잡힌 강남중산층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현우주를 작가와 동일인물로 보든지, 작가와 동일 선상에 놓인 사람으로 보든지 간에 상관없이 이들은 여전히 후까시나 잡는 고교생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책 뒷표지의 "일본 소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한국형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신기원!"이란 표현도 거슬리긴 마찬가지이다. 연예계 이야기가 나오고 음악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해서 엔터테인먼트는 아니다. 난 일본소설을 좋아하지만 한국 장르소설에 거는 기대도 큰 사람이다. 제발 이런 식의 후까시는 고만 잡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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