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액추얼리
코다마 유키 지음, 천강원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언덕길의 아폴론』2권 뒤에 수록된 단편을 보고, 이 작가는 사랑 이야기도 참 잘그리겠구나 싶었다. 물론『언덕길의 아폴론』에도 풋풋한 사랑을 하고 있는 고교생들이 등장하지만 아직은 사랑 이야기보다는 재즈와 우정에 관한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 이야기는 뒤에 수록된 단편쪽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뭘 읽을까 하고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가난한 공학도 후세 요이치는 첫눈이 내리던 날, 위험에 처한 백조 한 마리를 구해주게 된다. 그리고 얼마후 자신은 요이치가 구해준 백조라고 하는 한 아름다운 여성이 요이치를 찾아오게 된다. 뭘,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자기가 백조라고 말하는 미와가 요이치의 눈에 정상으로 보일리가 없다. 하지만 워낙 다정하고 순수한 요이치다 보니 그 말보다는 그저 그녀의 아름다움과 따스한 마음에 더 끌리게 된다. 이제껏 연애 한 번 못해 본 요이치는 미와와의 포근포근한 생활에 점차 익숙해져가고, 더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행복의 절정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미와는 모든 일에 서툴었다. 요이치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려 하지만 늘 낭패만 본다. 그런 미와가 너무나도 잘 하는 것이 있었으니 수예품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는 것이었다. 요이치의 소꿉친구인 시오리는 니트작품 온라인샵을 운영하고 있는데, 시오리는 미와의 작품을 자신의 온라인샵에서 팔기로 한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뻐하는 미와. 그런 미와를 보고 또다시 한 번 찡하게 반해주는 요이치였다. 한편 니트왕자로 알려진 쿠츠자와는 아무리 봐도 미와가 이상해 보인다. 쿠츠자와가 보기엔 미와는 쿠츠자와가 제일 싫어하는 4차원 소녀타입이었기 때문이다. 

포근함과 따스함, 그리고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미와의 작품은 가짓수는 적지만 사람들에게 인기몰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쿠츠자와의 어머니가 쿠츠자와를 찾아와 '네 작품에는 사랑이란 게 빠져있다' 말한다. 아버지의 불륜으로 힘겨워하던 어머니를 위해 니트 작업을 시작한 쿠츠자와는 어느샌가 그 마음을 잊고 살았던 걸까. 쿠츠자와는 편한 친구처럼 지내던 시오리와의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음, 난 미와와 요이치 커플 이야기도 좋았지만, 시오리와 쿠츠자와가 연인이 되는 과정을 담은 부분도 참 좋았다. 미와 커플은 반짝반짝 퓨어 화이트 계열이라면, 시오리와 쿠츠자와는 새콤달콤 오렌지 계열이랄까. 미와 커플은 때로 너무나도 과하게 빛이 나서... (笑) 나쁜 건 아니지만 웬지 현실감이 좀 부족하달까. 물론 미와가 백조가 사람으로 변신한 모습이란 것부터가 판타지이지만....

백조는 철새다. 늘 한 곳에 머물수가 없다. 겨울엔 시베리아보다 좀더 따뜻한 곳으로 오지만 봄이 되면 다시 시베리아로 날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요이치를 두고 떠날 수 없어 날개옷을 버리려 했던 미와. 하지만 그것이 미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요이치는 그것을 다시 찾아온다. 이들의 만남에는 처음부터 이별이란 것이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만남은 결국 이별이란 것으로 끝나는 건지도 모르지. 이들의 이별이 좀더 빠른 시간에 찾아왔을 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미와, 순진하고 귀여운 요이치. 씩씩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린 시오리, 그리고 시니컬하지만 세심한 쿠츠자와.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만화는 보기 드물지만, 이 작품은 모든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비록 결말은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 나름의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 꼭 결혼해서 아이낳고 잘 살아야 해피엔딩은 아니겠지. 그토록 아름다웠던 겨울날이 있었다는 걸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차가워야할 눈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요이치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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