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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현대사회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며 글쓰는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글을 분업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근대까지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동시에 공부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서양의 경우 철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의 양반계층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들어서 서민문학이 태동하고 발달하긴 했지만, 근간을 이루는 것은 역시 양반들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조선시대 양반들의 글은 딱딱하고 따분하며 상징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을 받지만 그 시절에 남겨진 모든 글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에 등장하는 이옥과 김려의 경우 당시 유행하던 당송체보다는 패관소품을 즐겼던 인물들로 그들이 남긴 글 역시 당대의 딱딱하고 고루한 글들과 다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18세기 후반의 문인이었던 그들의 삶과 우정, 그리고 그들의 남긴 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절묘하게 조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배에서 돌아와 부여 현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김려는 어느 날 이옥의 아들 이우태의 방문에 잊고 싶던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성균관 수학 시절의 친우였던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당송체보다는 패관소품같은 문장형식을 즐겨 썼다. 하지만 왕인 정조는 패관소품에 대해 강력한 금제령을 내렸었고, 이에 불복한 이옥과 김려는 강이천 유언비어 사건에 휘말려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 시절의 기억은 김려에게 있어 지우고 싶은 과거였다. 하지만 이우태의 등장으로 다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우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김려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옥의 영혼과 마주하게 된다. 유배를 가던 당시의 이야기며 유배지에서의 생활 등에 대한 글을 이옥과 함께 나누게 된 것이다. 친우였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 멀어지게 된 후 김려의 마음은 늘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김려가 남긴 글들을 읽으며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잊고 싶은 과거의 무거운 짐과 상처, 그리고 친우였던 이옥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떨쳐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김려는 그 당시 자신이 어떤 글을 썼는지를 기억해 내고, 그 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유배지까지 가는 여정은 죽을 정도로 힘들었고, 유배지에서의 생활 역시 고달팠으나 그곳에서 나눴던 사람들과의 정이 그를 버티게 해줬건만 유배가 끝나자마자 그것을 모조리 과거 속으로 집어 넣고 잊으려 했던 김려는 자신이 지금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뒷간 갈 때 마음과 다녀온 후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한때는 친우였지만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친구를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 유배지에서의 고달픈 삶속에서 나눴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그리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함께 나눴던 것들을 잊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삶 한부분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이우태의 방문으로 잊고 지냈던 이옥의 글을 읽고, 자신이 유배기간동안 썼던 글을 다시 읽음으로써 김려는 자신이 예전에 추구했던 글쓰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진정한 글이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비록 이들의 글이 양반이라는 신분을 뛰어 넘지는 못한 글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이들은 18세기 조선시대의 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사람들이란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김려와 이옥이 쓴 글은 본문 곳곳에 인용되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유배지로 가는 여정 동안 김려가 남긴 일기와 유배지에서 쓴 다양한 글들은 그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김려가 이제껏 자신이 모르던 다양한 삶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들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특히 정을 나누던 연희에 대한 사모의 마음이라든지, 한양에서는 구경하지도 못하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또한 이옥의 섬세한 관찰이 돋보이는 글들을 비롯해 본인의 개성이 담뿍 담긴 글을 읽다 보면 이게 정말 조선시대에 씌어진 글들인가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끝끝내 자신의 붓을 꺾지 않았던 이옥과 한때는 자신의 붓을 꺾고 세상이 원하던 글을 쓰던 김려가 그후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약간의 판타지적 설정,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다양한 흥미점을 창출해낸다.
또한 책 뒷부분에는 정조의 문체반정과 강이천 사건에 대한 해설이 덧붙여져 있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후반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맥락을 짚어볼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소설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변화란 것은 대개 설렘과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요즘 시대의 경우 새롭다는 것이 설렘이란 감정을 많이 동반하겠지만, 이들이 살던 시기는 변화보다는 현상태의 유지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다. 그러하기에 세태와 맞지 않는 이들의 글이 배척되고 외면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뜻인즉슨 흰봉선 따위 세상에 하나 쓸모는 없어도 제멋에 잘 살더란 이 말 아니겠소? (21p)
이옥이 쓴 글, 김려가 쓴 글은 지금은 멋진 글이라 평해지지만 당시에는 쓸모없는 글이었고, 정조의 이념에 반하는 글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이옥은 흰봉선화처럼 제멋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그들에게 있어 그 길은 멋진 길이었고, 멋진 삶이었고, 멋진 글이었으니, 이 또한 멋진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