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 하옵니다 - 뉴 루비코믹스 245
히노데 하이무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읽었던『니혼바시 동반자살』로 알게 된 히노데 하임의 다른 작품을 고르다 보니 의외로 시대물이 많았다. 그중 먼저 집어 든『꽃이라 하옵니다』는 카마쿠라 막부시대를 비롯해 전국시대 ~ 에도 시대에 이르는 시기가 배경이 되는 작품 총 5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이다.

표제작이자 첫번째 수록작인 <꽃이라 하옵니다>는 생사를 건 전쟁에 나가야 하는 소년 닌자 코타로가 어린시절 친구이자 사무라이의 아들인 큐베를 만나 하룻밤 정을 나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할 자신이 없는 코타로는 하룻밤의 정을 나누는 것도 닌자의 기술이라며 본심을 숨기고 만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코타로를 잘 알아온 큐베는 코타로가 숨기고 있는 마음을 눈치채게 되는데... 코타로가 자신의 마음을 숨긴 이유는 첫번째로 큐베의 마음이 어떤지 몰라서였겠고, 두번째로는 자신이 전쟁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겠지. 본심을 전한 후 죽어버리면 남겨진 큐베가 가슴 아파할까 그게 두려웠던 게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현재가 교차되며 그려지는 이야기는 난세속에 태어나 갈길이 갈려버린 두 사람의 아픔을 더욱 극대화 한다.

두번째 수록작품인 <L'INTERDIT - 금기>는 에도시대 초기를 배경으로 한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막부 시대가 열리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방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사무라이의 힘을 약체화할 방안을 내린다. 그중에는 지방토착 사무라이도 포함되었는데, 이들은 더이상 사무라이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살아 가게 된다. 사무라이 집안이었던 촌장의 집안도 마찬가지로 촌장의 아들인 야스케는 그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안다. 한편 야스케는 어린시절부터 마을에서 배척되어 왔던 존재인 진사부로를 짝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무엇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진사부로의 이야기를 구체화해서 들려주는 대신 야스케와 진사부로가 기도를 하면서 두손을 모으는 모습의 차이점으로 진사부로의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금기된 신앙을 믿는 자, 그리고 더이상 무사의 자손이 아닌 자. 이들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지. 

<봄밤은 벚꽃으로 밝힌다더라>와 <들판을 밝게 산을 밝게 비춘다>는 연작인데 코가에서 도망친 카닌 몬시로의 이야기로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카닌은 닌자의 한종류이지만 저택에 고용되어 카닌에게 명을 내리는 존재인 우에닌과는 계급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평생을 카닌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은 죽을때까지 어둠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원래 닌자란 것이 그림자같은 존재이지만 이들은 그 그림자의 그림자라고 할까. 적을 암살하고 살아남기 위해 익히는 기술들은 그런 이유때문에 정면대응용이라기 보다는 숨어서 공격하는 기술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검도도 배우지만 대부분은 수리검, 독침, 환술 등 어떻게 보면 얍삽한 방법이랄 수 있겠지만, 효과는 꽤 컸을 듯. (닌자가 등장하는 애니같은 걸 보면 이들은 거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무사 쥬베이에 나오는 닌자도 그렇고, 바실리스크 - 코우가 둔갑술첩도 그렇고 말이죠. 헉, 닌자 이야기가 좀 길어졌군요)

이 몬시로가 도망을 다니며 맺게 되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이 두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첫번째 인연은 어부, 두번째 인연은 하급 무사. 일단 도망을 치면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이 죽을때까지 도망을 다녀야 할  운명의 카닌인 몬시로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지. 지금 시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험난한 시대의 이야기. 그래서 그 사랑이 더욱 아픈지도.

마지막 이야기인 <텐구의 숲>은 카마쿠라 막부 시대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카마쿠라 막부의 성립은 헤이안 시대가 끝을 고하게 했다. 어쩐지 코레치카의 복색이 헤이안 시대와 비슷하다더라니. 하여튼 코레치카가 산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이 소년은 자신을 이치리산의 텐구의 아들이라 한다. 어린 나이에 혼자 살아가는 아이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사는데, 이 아이를 찾아오는 건 근처 절의 중들이었다. 이때 역시 남색문화가 존재했는데, 스님들은 동자와의 남색을 즐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건 아니고.

텐구는 보통 요괴같은 존재로 그려지는데 실제로는 난세를 피해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조용하게 수련을 하는 걸 보고 텐구라 부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아이 역시 그런 이의 자손이었겠지. 류오마루란 이름을 가진 아이와 정을 통하는 코레치카를 보고, 이거 쇼타콤!!! 이라고 하려다 일본 고대시대에는 동자문화가 있었다니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의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현저히 짧아 십대 중반쯤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니...하고 다시 한 번 납득. 그러고 보면 일본의 남색문화는 그 존재기간이 정말 길단 말이지... 우리나라는 어땠으려나?

카마쿠라 막부 시대 초기, 전국시대, 에도시대 초기 등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닌자, 사무라이, 사무라이의 후손, 크리스찬, 어부, 동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 즐거웠다. 분명 이들이 살던 시대는 사람 목숨이란 것의 가치가 지금보다 없었던 때이다 보니 험난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인물들도 많았다. 지금에야 이런 걸 보면서 무척 흥미롭다고 하겠지만, 역시 당대 사람들에겐 힘겨운 일투성이었겠지. 그런 힘겨움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라 그런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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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이렇게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이! 별 수 없이 장바구니로..

스즈야 2011-05-30 22:13   좋아요 0 | URL
히노데 하임, 시대물 잘 그리는 듯. 나온 번역본 중 세 권이 시대물인데 다 괜찮았어요...

2011-05-3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시대물이 그리기 힘들것 같아요. 조사는 물론이고 시대 자체가 다르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달라서 신경써야 하고-배경이나 옷, 장신구같은 것들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이야기 풀어나가는 점이라고 할까요. 저는 역사 공부 하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는데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다니, 그저 신기합니다. :)
본 책인 <꽃이라 하옵니다>랑 <바늘을 검 삼아 그릇을 배 삼아> 이외에 나머지 시대물 한권은 무엇인가요? 표지만 봐선 나머지 3권중 구분이 안간다능..

2011-05-31 22:46   좋아요 0 | URL
아! <니혼바시 동반자살>에 작가 이름이 히노무 하임이라고 되어 있네요. 하이무가 아니여서, 같이 검색이 안 됐다능..

뭘 먼저 읽어볼까요. 아아. 고민됩니다. ㅎㅎ

스즈야 2011-06-10 20:33   좋아요 0 | URL
시대물은 원서로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예쁜 말이 정말 많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극존칭 대사가 많아서 그건 나름대로 힘들단거.. ^^ 그래도 시대물만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지요.

스즈야 2011-06-10 20:34   좋아요 0 | URL
음... 히노데 하임, 히노데 하이무.. 이렇게 명칭이 갈라져서는... ㅋㅋ
다 괜찮아요. 나중에 시간되면 함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2011-06-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렇군요! 그러면 원서로 한번 도전을 해볼까봐요.
안 그래도 이제 슬슬 일본어 공부도 진짜 다시 시작해야 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댓글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ㅠㅠㅠ 히노데 하임이든 히노데 하이무든, 시간되면 한번 읽어볼게요. 늘 감사해요!

스즈야 2011-06-12 00:12   좋아요 0 | URL
저도 교님도 시대물을 좋아하니 권해드린 거랍니다. 이 작가 꽤 괜찮아요. 현대물은 아직 안봤지만요... 현대물은 나중에 읽고 말씀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