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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초콜릿 ㅣ 미스터리랜드 1
오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히라타 슈이치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오츠이치를 좋아해서 그의 작품을 종종 읽고 있는데, 그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이 다크계 소설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 다크계열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다크계 작품은 꽤나 잔혹한 편이라서 이런 작품을 좋아하는 나도 가끔은 움찔할 때가 있다.『총과 초콜릿』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 그의 다크계 작품과는 좀 다를 거란 예상은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퓨어계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했는데, 역시나, 랄까. 하여튼 꽤나 독특한 느낌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린츠라는 소년이 사는 나라에는 전쟁으로 돈을 번 부잣집만 골라 터는 도둑이 있다. 그가 어떤 수법으로 도둑질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솜씨는 신출귀몰해서 스무건이 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아무런 단서도 획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 도둑은 괴도 고디바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가 범행을 저지른 장소에는 괴도의 이름이 적힌 듯한 카드 한장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디바를 잡기 위해 명탐정 로이즈가 나섰다. 로이즈는 아이들의 영웅으로 우상화되어 있는 존재이다.
린츠 역시 로이즈를 숭배하다시피 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다. 린츠네 아버지는 약 1년 전 돌아가셨고, 안그래도 가난한 린츠네 살림은 더욱 가난해졌다. 안그래도 이민자의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는 린츠는 늘 힘겹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린츠는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성서안에서 낡은 지도를 한 장 발견하게 된다. 그 지도는 어떤 마을의 지도로 괴도 고디바와 관련된 것이었다. 린츠는 이 지도를 로이즈에게 보여 주고 대신 현상금을 받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린츠가 용돈벌이 하는 빵배달이나 엄마가 약품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는 살림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민자 아이, 그리고 부자들의 금화나 보석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괴도, 그리고 그 괴도를 쫓는 탐정의 이야기라고 하면 모험 소설 + 탐정 소설이란 구도가 나온다. 근데 묘하게도 탐정이 수사하는 장면은 별로 없다. 오히려 수상쩍은 탐정이랄까. 이 소설의 묘미는 바로 이러한 것에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블랙 유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간중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오고 마는 것이다. 오츠이치의 특징이라면 꽤나 잔혹한 장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인데 이 작품에선 그런 것이 더욱 더 잘 표현된다. 다른 소설이라면 인상을 찌푸릴 장면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만은 또다른 재미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탐정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로이즈의 모습에 허탈한 웃음도 나오긴 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꽤나 재미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두바이욜이란 아이는 꽤나 잔혹한 근성을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의리도 있는 아이이다. 이 아이가 린츠가 모험에 나서게 하고 탐정에 맞서게 하며 괴도가 숨긴 보물이 있는 곳을 추적하게 만든다. 사실 두바이욜이 나올 때마다 움찔할 수 밖에 없었는데, 너무 아이답지 않아서 그렇달까. 그에 비하면 린츠는 그 또래 아이답다. 물론 일찍 철이 든 아이긴 하지만, 아이의 순수함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니까.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고, 이기적인 어른과 당돌한 아이가 대치하며, 탐정이 가진 정형화된 이미지를 한번에 부숴버리는 이 작품은 유쾌한 반면 이런저런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민자의 자식이라며 인종차별을 당하는 린츠의 이야기라든지, 괴도의 훌륭한(?) 행적을 덮기 위해 고용된 악당같은 탐정, 총알 공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아동 노동 등은 이 작품은 흔히 생각하는 탐정소설이 아니란 걸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스터리 작가답게 눈에 보이지 않는 복선도 깔아두었는데, 책 후반부에 들어서 그 의미를 알고 무릎을 탁 치고야 말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제목인『총과 초콜릿』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총도 초콜릿도 모두 검은색이지만 하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총도 초콜릿도 모두 손에 쥐어야 했던 아이의 가혹한 성장담이자, 블랙 유머로 난무한 탐정소설. 이런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오츠이치의 매력은 정말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