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반려동물의 죽음 -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리타 레이놀즈 지음, 조은경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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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잠시 잦아든다 싶으면 금세 세찬 비가 쏟아졌다.
2년전 오늘은 그토록 화창한 날씨였었는데...


   

2009년 5월 10일 아침 7시경, 우리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5월 들어서부터 부쩍 기력이 쇠한 느낌은 들었지만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서 그저 괜찮겠거니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새벽 가을이는 몹시 힘들게 숨을 헐떡였고, 그 중간중간 기침이 잦아들 때면 물끄러미 나의 얼굴을 쳐다 보곤 했다. 그때 난 뭘 했던가. 게임한다고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서 가을이가 심한 기침을 할 때 몇번인가 토닥여주기만 했다. 기침이 너무 심해지고서야 난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고 가을이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혹시 화장실이 가고 싶은 건가 싶어서 안고 화장실에 데려갔더니 앞다리에 이미 힘이 빠져서 미끄러지기만 했다.

우리 보람이가 기력이 빠지고 힘들어할 때 늘 우유를 먹이던 것이 생각나서 가을이에게 우유를 조금 주었다. 할짝할짝 맛있게 먹지만 힘겨워 보이는 가을이. 잠시 우유 먹는 걸 멈췄을 때 난 가을이에게 접시를 밀어주면서 조금만 더 먹어, 가을아라고 했다. 그랬던 가을이는 그 말을 알아듣는 양 남은 우유를 다 마셨다. 그리고 잠시후, 가을이가 쓰러졌다. 항문이 벌어지면서 변이 밀려나오는 걸로 봐서는 가을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난 가을이를 안고 베란다로 나가 다리를 마사지해 줬지만 결국 햇살이 눈부신 5월의 아침, 가을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그때 난 가을이가 떠나는 것이 몹시도 슬퍼서, 안돼 가을아, 안돼 가을아, 라고 몇번이나 울먹이며 외쳤지만, 가을이는 아마도 우유를 먹으면서 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줬던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끝나자 이 세상과의 인연을 놓은 듯 했다. 18살의 노령견, 어떻게 보면 아픈 것 하나 없이 밥 먹고, 간식먹고, 우유까지 먹고 떠난 가을이는 사람으로 치면 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가을이가 그렇게 떠나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만 계속 흘렀다. 이미 축쳐진 몸을 안고 미안해, 사랑해를 반복하며 울었다. 그러고 나서 가을이가 제일 좋아하던 방석에 눕히고 귀도 닦아 주고, 눈꼽도 떼주고 하면서 염을 하듯 가을이 마지막 단장을 마쳤다. 그리고 가을이가 제일 좋아하던 옷을 입히고 가을이 앞발을 꼭잡고 옆에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울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깨면 가을이가 점점 차가워져가고 점점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난 혼자 집에 있었고, 우리 개들이 다섯마리나 더 있었지만 아무도 가을이가 떠난 것을 모르는 듯 했다. 오히려 내가 가을이만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속상했는지 내 옆에 꼭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나머지 녀석들을 보면서 속이 상했다. 그렇게 열두시간쯤이 지나 부모님께서 돌아오셨고, 가을이를 화장할 것이냐 매장할 것이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화장을 할까 싶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애견용 화장센터는 너무 멀었고, 그래서 결국 시골집 옆에 있는 지금은 쓰지 않는 공간에 가을이를 묻기로 했다. 하룻밤을 집에서 보내고, 다음날 새벽 가을이는 시골집 옆에 있는 공터에 묻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수시로 시골집에 다녀오기 때문에 가을이가 잠든 곳에 가서 가을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오지만 겨울에는 시골집을 비워놓기 때문에 매년 5월 10일이 가을이를 처음으로 만나러 가는 날이 된다. 작년에는 날씨가 좋아서 다녀왔지만, 올해는 결국 가을이가 잠들어 있는 곳까지는 못올라가고 밑에서만 안부를 전하고 왔다. "가을아, 잘 있었어? 언니도 잘있어. 다른 녀석들도 가을이 덕분에 잘 지낸단다. 날씨가 좋아지면 또 올게~~ 보고 싶었어, 가을아."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이렇게 나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는 것을 펫로스라고 한다. 이때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반려인들은 힘겹고 아픈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가을이 이름의 '가'자만 발음해도 눈물이 후두둑 쏟아져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고, 다섯마리의 남은 개들을 돌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은 거의 밖으로만 나다녔다. 집안을 둘러보다 보면 가을이와의 추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도저히 그곳에 있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미안한 일만 떠오르는지... 이건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겪는 과정일 것이다.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미안한 일만 떠오르고 그래서 더 슬프고, 이것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던 날의 슬픔과 아픔보다는 가을이가 내게 남겨준 행복과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추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다시 실감한다. 가을이가 내게 남겨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반려동물의 죽음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추억과 사랑에 감사하는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동물 친구들의 영혼이 삶이란 여행을 지나 새로운 여행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고, 우리의 관계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압니다. 죽음은 단지 일시적인 헤어짐일 뿐이지요. 죽음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면 그 안에 사랑이 있을 자리가 없어집니다. (41p)

비록 우리 가을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이 세상에서 더이상 만날 수는 없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가을이를 일부러 잊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을이를 잊는다면, 가을이가 남겨준 추억, 행복, 기쁨, 사랑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가을이를 생각할 때면 즐거웠던 일만 떠올리게 된다. 세 다리로 뒤뚱거리면서도 잘 뛰어다니던 일, 간식을 먹일 때면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받아먹던 일 등 가을이의 이쁜 모습들이 이토록 많은걸.

가을이를 갑작스레 떠나보냈을 때는 혼자서 모든 슬픔을 추슬러야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건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이고, 그 전에는 나도 아무 생각이 없어 그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이 책은 동물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공감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사연들을 읽다보면 자꾸만 가을이의 마지막 날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지지만, 이 책의 목적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동물들의 마지막을 잘 보내주는 것에 있다.

노령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동물도 있지만, 병이나 교통사고등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어떤 식으로 보내줘야 하는지 미리 생각해 둔 게 없다면 슬픔만이 가득한 마지막이 될 것이다.

동물들은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죽지 말라고 애원하지 않는 한, 그들의 가는 길을 놓아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몸을 떠나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81p)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던 날 난 가을이를 붙잡고 안돼, 가을아, 안돼를 반복했다. 가을이가 마음 편히 떠나도록 배려해주지 못했다는 걸 난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제 편안히 떠나렴,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가을이는 좀더 편히 떠났을텐데 하는 후회가 든다.

지금 내 곁에는 노령견들이 다섯마리나 있다. 종종 농담조로 우리집은 개들의 실버타운이라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평균 연령이 10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19살짜리 공주는 1년반 전에 한 번 쓰러진 후로는 꽤 많이 아팠다가 겨우 회복해서 밥도 잘먹지만, 성격이 많이 괴팍해졌다. 화도 자주 내고 성질도 부리고, 평생 짖는거라고는 몰랐던 녀석이 밤새 짖기도 하고 소리도 고래고래 지른다. 앞으로 같이 할 날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마음의 준비는 이미 하고 있지만, 마음의 준비란 건 허울뿐이고 결국 그날이 오면 난 가을이 때처럼 펑펑 울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주에게 그 날이 오면 그동안 수고했어, 이젠 편안히 떠나도 돼, 라고 말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슬픔과 아픔에는 대비하지 못할지라도 공주가 편안히 떠나도록 배려는 해주고 싶다.

16살의 보람이는 종양이 있다. 하지만 병원치료 대신 집에서 호스피스를 한다. 먹고 싶은 것 먹게 하고 하고 싶은 것 하게 하고. 워낙 예민한 녀석이라 병원에서 주사만 한 대 맞아도 경기를 일으키기 때문에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12살의 꼬맹이는 간이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그 치료가 오히려 꼬맹이를 힘들게 해서 치료를 그만두고 집에서 계속 돌봤다. 그후로는 놀랄 만큼 건강이 좋아져서 그후로 3년째 펄펄 날아다닌다. 하지만 며칠 전에 또 경기를 일으켜서 눈동자가 돌아가고 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팔다리를 주무르고 심장마사지를 해줬더니 금세 괜찮아졌다. 돌돌이와 나라는 다른 문제가 없어 안심하고 있지만 녀석들도 13세, 10세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건 안다.

이렇게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질환을 가지고 있고, 병원에서는 언제 어떻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후로도 녀석들은 아직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고 있기에 나중에 때가 왔을 때 잘 죽어 주기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잘 죽는다는 말은 편안하게 고통없이 승천했으면 하는 말이다.) 

요즘 들어 매일매일 우리 강아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가을이의 경우 내 품에서 떠났지만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내 품에서 떠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혹시 내가 자는 동안, 내가 외출한 동안 무지개 다리를 건널까 싶어 그게 제일 걱정이기 때문에 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하고 있다.

언젠가 공주, 보람이, 나라, 꼬맹이, 돌돌이도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미리 겁먹고 슬퍼하기 보다는 지금 현재를 행복하게 보내며 마지막에 해줄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미리 생각해 둬서 편안히 보내주는 것이 녀석들의 마지막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니까.  


 

가을아,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네.
시간 참 빠르지? 가을이가 떠나던 날 언니는 너무나도 힘들고 슬펐어.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가 내게 남겨준 많은 추억과 행복과 사랑을 떠올리면서 살게 되었단다.

가을아, 언니의 강아지로 와 줘서 정말 고마워.
가을이는 언제까지나 언니의 강아지.
언니는 언제까지나 가을이의 언니란다.
이것만은 잊지 말아주렴.
 
가을아, 다음 생에도 내게 와주렴.
다음 생에도 나의 가족이 되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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