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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재벌 그룹의 폭로 기사를 썼다가 송사에 휘말린 잡지「밀레니엄」의 공동사주이자 저널리스트인 미카엘은 구재벌 그룹인 방예르 그룹의 전 총수 헨리크 방예르의 의뢰를 받아 36년전 사라진 하리에트 방예르의 실종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한다. 표면적인 목적은 방예르가의 일대기 저술이지만 실제 목적은 그녀가 정말로 살해되었는가, 그리고 살해되었다면 누구에 의해 살해되었는가에 대한 조사였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권)
재판 결과에 따라 3개월의 징역(실제로는 2개월로 감형)을 마친 미카엘은 다시 헤데뷔섬으로 돌아와 하리에트 사건에 대한 자료를 재검토하던 중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게 된다. 하리에트가 실종된 날 찍힌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날 하리에트는 누구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혼자서의 힘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한 미카엘은 보안업체의 조사요원 리스베트를 고용하여 자신이 포착한 단서를 하나씩 추적하기 시작한다. 미카엘은 리스베트의 도움을 얻어 그날 찍힌 사진들 중 헨리크 방예르의 손에 들어오지 않은 사진들을 중심으로 추적에 나서고 용의자로 생각되는 인물이 찍힌 사진을 획득한다.
한편, 하리에트의 메모에 있던 사람의 이름과 번호는 의외의 곳에서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다. 미카엘을 찾아온 미카엘의 딸이 그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그 단서란 바로 그 숫자가 성경구절을 의미한다는 것이었고, 그 성경구절은 희생 번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리스베트는 성경구절의 내용과 비슷한 여성살해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하리에트의 메모보다 훨씬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기 시작하자 그들을 노리는 듯한 범행이 잇달아 일어난다. 미카엘이 묵고 있는 집에 자주 찾아오던 고양이가 희생번제의 제물로 희생되었고, 가택침입에 이어 미카엘을 노리는 총격 사건까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널리스트의 본능에 충실한 미카엘은 그러한 위협에도 꿈쩍하지 않고 하리에트 사건을 계속 추적한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권은 하리에트 사건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급속도의 진행상황을 보인다. 숨이 가쁠 정도였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개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가슴이 뛰는 것도 잠시, 마침내 드러난 이 모든 사건의 진실에 전율하고 말았다. 하리에트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었던 사건이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진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송이 아름다운 꽃 밑에 그토록 얽히고 설킨 뿌리가 존재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는 방예르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헨리크는 36년전에 하리에트에게 일어났던 일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미친 야수들'의 축제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미친 야수들'의 축제에 희생된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들 중 가장 하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민자들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미친 야수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죽여도 아무 뒷탈이 없을 희생제물을 골랐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범인이 적어도 두 명일거란 생각은 했었다. 범인들의 관계도 어쩌면 가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대의 범인이 2대의 범인을 어떻게 양산했는지, 그리고 또다른 공범을 만들기 위해 어떤 짓거리를 벌였는지 알게 되면서 충격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가족에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희생된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서도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지만,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에서도 눈을 돌리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이런 전개에 비한다면 하리에트 사건의 결말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어쩌면 하리에트 사건 뒤에 감춰진 방예르가의 벽장 속의 해골(skeleton in the closet)이 너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말 화가 난 것은 그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헨리크 방예르의 태도였다. 그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에 의해 드러난 방예르가의 벽장 속 해골들을 다시 벽장 속으로 깊이 깊이 숨기길 원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도 팔은 안으로 굽는 인간이었던 것에 허탈함이 생겨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난 리스베트의 결정에도 처음에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리스베트의 결정이 옳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추악한 진실을 폭로한다고 해서 도살당하듯 살해당한 여인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대신 리스베트는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길 원했다. 지금 상황에선 그것이 가장 제대로 된 정의구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렇게 하리에트 사건은 마무리되고, 이제 남은 것은 미카엘의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재폭로에 관한 것이 남았다. 하지만 헨리크 방예르의 처음 말과는 달리 그가 미카엘에 전해준 정보는 시시한 것에 불과했다.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것은 결국 미카엘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베네르스트룀의 비리에 대한 조사 역시 리스베트의 천재적인 해킹 실력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고 보면 미카엘은 하리에트 사건과 더불어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폭로기사 작성까지 리스베트의 도움을 받지 않은 부분이 없다. 게다가 이런 부분뿐만 아니라 미카엘은 리스베트에게 목숨까지 구해졌으니 이중삼중으로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면서 둘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미카엘은 위험한 남자다. 특히 리스베트처럼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입장이라면 말이다. 미카엘은 자유분방한 남자다. 이는「밀레님엄」의 공동사주인 에리카와의 관계를 봐도 알 수 있다. 유부녀인 에리카와 미카엘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구속하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미카엘이 전처와 헤어지게된 계기도, 세실리아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이유도, 리스베트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지 않는 것 역시 그의 기본 품성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부담스러워한다. 미카엘에 있어 자신의 옆에 머무를 자격이 있는 여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미카엘이 저널리스트로서는 어떤 사람이든 인간적인 면에서는 저질이다. 이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리스베트는 그에게 이용당한 것 뿐이다. 리스베트가 그에게 줄 선물을 쓰레기통에 쳐박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아마도 리스베트는 진심이 되었던 자신의 마음도 함께 쓰레기통에 쳐넣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곁을 허락하고 마음을 허락했던 리스베트에게 있어 미카엘이란 남자는 좋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리스베트는 그것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겉으로만 강한 미카엘보다 수십배 수백배는 강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