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목공소 -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김진송 지음 / 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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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너 정말 기발한 상상을 하는구나, 너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대체로 어린이들은 기발한 생각을 잘해낸다. 그런데 왜 성장해 나가면서 점점 그 능력은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어린이는 자신이 경험한 세상의 폭이 좁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 - 이는 대체로 어른들이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 으로 자신이 보는 세상을 대체하려 때문에 그런 현상이 잘 일어난다. 하지만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세상의 넓이도 넒어지고 지식의 깊이도 깊어지면서 언어로 그 대부분의 것을 대체할 수 있고 눈앞의 현상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러기도 귀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풍부한 상상력을 뽐내며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어서도 그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일까.

목수와 글쟁이

저자는 목수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양립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의 이분법적인 논리로 보자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두 가지 직업군에 모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목수와는 좀 다르다. 우리가 목수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 사람이지만, 저자는 작은 목물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상상력을 부여한 목물을.

주제를 정하고 단어를 엮어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이어 논리적이거나 서사적인 흐름을 엮어가는 글쓰기는,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나무토막을 깎고 이어서 구조를 만들고 힘의 균형과 미학적 고려를 거쳐 완성하는 나무작업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떤 일이건, 머리로 하건 손으로 하건 자신이 선택한 질료를 적절한 쓰임의 세계로 이끄는 과정만이 필요할 것이다. (18p)

그가 만들어내는 것은 나무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존재하는 또다른 세상이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와 목수일이 결합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런 그는 글쓰기와 목수일이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점도 많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특수한 행위를 취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목물들은 독특하다면 독특하달 수 있다. 보통 목수들이 만들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나 더욱 다른 점은 그가 만들어 내는 목물들에 부여된 상상력이란 것일 것이다. 목수들이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일정한 상상력이 필요하겠지만, 요즘의 목수들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설계도를 가지고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기 때문에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는 일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그가 만들어 내는 목물들에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고,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야기를 구체화한 것이 그가 만드는 목물들인 것이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만,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목물들에는 시각적, 서사적, 물리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은 모든 언어들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메워주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자 유일한 방법이며 또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인식의 원리이기도 하다. 언어가 간접적이고 시간적이고 구조적이라면 이미지는 직접적이며 즉흥적이고 공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미흡한 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글에 이미지의 요소를 집어넣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흡하고 비어 있는 이미지의 공간을 글쓰는 이의 상상과 독자의 상상으로 채우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만들어 진다. (23p) 

그가 만든 목물들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때로는 저자가 상상한 것과 다른 이미지를 재구축하기도 한다. 각각의 사람이 가진 경험과 지식의 폭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저자가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 텍스트는 읽는 독자의 경험의 폭과 지식의 폭, 그리고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이다.

이해와 공감, 그리고 소통의 통로

그렇다면 상상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소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상상력은 발랄하고 유연한 사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상상력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상상력은 구체적인 물질이나 아이디어의 영역에서 발휘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다지 새로운 발상을 하기 위한 기술이나 기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각이 아닌 다른 존재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나 태도를 말한다. 따라서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리고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상투적으로 매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168~169p)

우리는 흔히 상상력이란 반짝이는 아이디어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갑자기 튀어 나올리가 없다. 경험과 지식의 축적도 중요하겠지만, 평소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 또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 관심은 그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어지고, 또다시 그것은 공감이란 것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상상력이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태도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감정이입일 것이다. 감정이입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상상력의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방편으로 유효하다. (200p)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든다면 인간의 인식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들을 만났을 때 당황할 수 밖에 없고 배척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연의 세계에서 종종 일어나는 동족포식문제를 인간의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야만적이고 잔혹한 행위일 수 밖에 없지만, 자연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와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상 이해나 공감, 나아가서는 소통마저도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소통의 한계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소통의 부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종종 존재한다. 인종에 따라 관습에 따라 성별에 따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인간 사회이기도 하다. 오히려 자연의 세계는 딱부러지는 일원화된 법칙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인간 사회는 그런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생각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상상력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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