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북유럽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북유럽 신화, 아름다운 자연 풍광, 세계 최고의 사회 복지, 그리고 획기적인 교육제도 등은 북유럽권에서 살지는 못해도 언젠가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간단한 것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북유럽권 문학 작품이라고 해 봐야 아르토 파실린나의 작품을 몇 작품 접해본 것 외에는 거의 접해보지 못했고, 특히 북유럽 미스터리는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을 두어권 가지고 있지만 아직 손도 대보지 못한 상태라 이 작품이 첫만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북유럽 미스터리라고 하면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 역시 북유럽이란 곳에 대한 환상때문이다. 즉, 이런 곳에서는 범죄가 발생하긴 해도 강력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늘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미국 범죄 스릴러나 추리소설, 드라마 등을 매력적으로 생각해온 부분도 있었다.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양한 소재와 스토리, 캐릭터들이 존재하겠지, 라고 생각했달까. 하지만 북유럽 미스터리가 이렇게 매력적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잡지『밀레니엄』의 이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한스에리크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폭로 기사를 쓴 후 명예훼손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의외로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한 미카엘은 재판결과에 승복한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회사는 큰 타격을 받게 되어 일단 회사 이사직에서 물러 나게 된다. 그런 그에게 재벌가의 총수였던 헨리크 방예르의 기묘한 의뢰가 들어오게 된다. 그의 의뢰란 36년전 사라진 하리에트 방예르 사건에 대한 조사였다. 엄청난 보수와 더불어 베네르스트룀에 대해 큰 타격을 줄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헨리크의 말에 미카엘은 결국 그 의뢰를 수락하고 만다. 

표면적으로는 방예르 일가의 일대기 작성이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리에트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하는 미카엘은 경찰 수사 기록, 헨리크가 스스로 조사한 기록 등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사건 조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고, 당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도 많아서 조사하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방예르 가문에 대해 조사할수록 얼른 손을 떼고 싶게 만드는 사실들이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방예르 가문에 대해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친 인간'들의 소굴이었다. 특히 방예르의 형인 하랄드의 경우 우생학을 내세워 유대인을 말살하고 싶어했던 인물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 문제때문에 헨리크나 딸인 세실리아를 증오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독일에만 이런 작자들이 있는 줄 알았더니 스웨덴에도 스웨덴 나치가 있었구나 하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한편 보안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조사요원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미카엘 사건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헨리크 방예르의 변호사인 프로데의 의뢰로 조사에 착수했지만, 미카엘이 헨리크의 의뢰를 수락하면서 조사가 중단되어 더 이상 조사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리스베트는 개인적인 관심에서 미카엘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24살의 아가씨로 조사요원으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지만, 겉모습이라든지 사고방식, 행동양식은 사람들의 기준을 약간 벗어나 있다. 자신만의 세계가 강한 타입인데, 이럴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꺼려지는 존재로 인식된다. 

1권에서는 리스베트의 대외적인 활약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 주목해야 할 것이 리스베트의 후견인 문제이다. 보통 후견인이라고 하면 미성년자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는데, 스웨덴의 경우 성인일 경우에도 후견인 제도가 적용되는 모양이다. 첫 후견인의 경우 리스베트를 존중하고 그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었다면, 두번째 후견인은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였다. 변호사란 번듯한 직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은 썩을대로 썩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의 추악한 본성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입장을 무기로 제도권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휘두르다니. 이렇다 보니 리스베트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남성중심의 제도권내에서 약자에 해당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리스베트의 행동은 법대로 하자면 분명 위법이었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리스베트가 제도권의 도움을 받으려 해봤자,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치욕과 비난밖에 없었을테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복지가 너무 허술해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면, 스웨덴이나 미국처럼 사회복지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 나라도 있다. 미드를 보면서 많이 느낀 것은 미국은 아동복지 문제에 투철한 나머지 부모자식을 생이별시키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리스베트의 후견인 문제를 놓고 봤을 때, 스웨덴 역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권내의 판단으로 그들의 발을 묶어버리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1권은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진행된다. 도입부가 반정도를 차지한다는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지루함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뒷내용에 대해 기대를 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인 미카엘과 리스베트란 인물에 대한 전반적인 자화상을 보면 미카엘은 우수한 저널리스트이지만, 사적으로는 자유분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스베트의 경우 보안업체의 우수한 조사요원이지만, 사적으로는 스웨덴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리스베트가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보통의 경우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일들에 대해 스스로 은폐하겠지만, 리스베트는 은폐는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리스베트의 행동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건면에서 보자면 미카엘이 수락한 의뢰 내용인 하리에트 사건 수수께끼의 의문점들이 묘사되고 있다. 하리에트가 사라진 날은 큰 사고로 인해 섬이 일종의 밀실 상태였고, 그후 매년 하리에트가 헨리크의 생일에 선물했던 압화가 배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외의 내용으로는 스웨덴 언론, 정치와 경제, 그리고 방예르 가문과 관련해서는 인종주의자와 스웨덴 나치주의자 등에 대한 내용을 들 수가 있다. 

한 권의 책이 엄청나게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적당한 짜임새로 들어가 있어 전혀 산만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있어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점점 놀라움이 더 커진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수수께끼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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