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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스런 박사님
키노시타 케이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4월
평점 :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상대가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옆에선 부추긴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는 거 봤냐고. 하지만 난 이렇게 반박하고 싶다. 골기퍼 없어도 절대 골이 안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 경우 짝사랑 중인 사람이 받는 타격은 꽤 크다. 만약 그 사람이 그저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하면 어떻게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노력이라도 해보겠지만, 만약 그 사람이 과거를 끌어 안고 사는 사람이라면 빈틈이 절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빈틈이 보인다 해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일 수 밖에 없으니까.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천재 과학자 나나하라 히로미는 연구능력은 월등하지만 생활력은 제로. 혼자서는 대부분의 것을 하지 못하는 남자다. 그런 나나하라를 챙겨주는 건 쿨하고 시니컬한 조수 이치노세로, 이치노세는 나나하라 히로미를 열렬히 짝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나나하라는 이치노세의 마음을 전혀, 절대 눈치채지 못하는 초둔감 박사님이다. 이런 설정을 보자마자 한숨이 포옥. 이럴 경우 열렬한 마음을 가진 쪽이 시간이 갈수록 지쳐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점은 나나하라가 끌어안고 사는 과거가 이치노세로서는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크라우스라는 인공지능과 대결중인 이치노세이지만, 실제로는 5년전 병으로 사망한 칼 크라우스와 대결중인 것이다. 인공지능 크라우스는 즉, 칼 크라우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그의 인격까지 이식된 상태이다. 산 사람은 이겨도 죽은 사람은 절대 못이긴다. 이건 뭐, 대결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랄까. 물론 대결이란 말이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사랑도 일종의 경쟁이 아니던가. 산 사람의 기억 속에서 날이 갈수록 미화되어 가는 죽은 자에 대한 추억에 산 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게다가 살아 생전의 칼 크라우스가 그토록 괜찮은 사람이었으니...
이 상태로도 벅찬 이치노세였지만, 예전에 나나하라와 대학을 함께 다녔던 찰리가 크라우스의 얼굴을 제작해오기까지 했으니... 근데 재미있는 건 크라우스란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이 은근히 이치노세의 인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내가 생각한 그것? 일단 내 가설은 나나하라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은연중에 조수 이치노세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크라우스의 인격에 이치노세의 인격이 더해진 것 아닐까. 뭐, 확인된 바는 없다.
인공지능 크라우스와 찰리는 이치노세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치노세와 나나하라를 연결시켜주려 하지만 나나하라는 초둔감, 이치노세는 겉모습과는 달리 극소심에 헤타레~~~ 이렇다 보니 둘을 보고 있는 크라우스와 찰리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답답해, 답답해를 외쳤다능~
이렇게 너무나도 소심하고 서투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한 둘은 절대, 저얼대 헤어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근데, 이치노세. 좀더 긴장해야겠어. 인공지능 크라우스도 그렇지만, 당신을 닮은 가사도우미도 나나하라 박사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지... (푸핫)
열정적인 사랑, 뜨거운 사랑, 달달한 사랑, 포근한 사랑, 위험한 사랑.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지만 이들의 담백한 이야기도 꽤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난 나나하라 박사 같은 사람은 절대 사절이다. 이치노세는 까칠해 보여도 마음이 엄청 엄청 넓어서 나나하라 박사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난 밴댕이 소갈딱지에 성격도 까칠하고 급해서 저런 사람하고 있다가는 내가 먼저 미쳐버릴 거다,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난 뭐냐. 남의 사랑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입장이 아니잖아! 부러우면 지는 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