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살인 사건 동화 보물창고 30
베티 렌 라이트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은 부모님 가까이서 사는 것이 무척 좋지만,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었다. 아마도 중학교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사춘기란 것이 시작된 시기와도 비슷한데, 그때는 무엇에든 반항심이 생기곤 했었다. 무엇무엇을 해, 라는 말을 들으면 '싫어!'란 말이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나왔으니까. 살면서 사람들은 그런 시기를 꼭 겪게 되는데, 난 그게 중학교무렵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였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생활때문에 거의 10여년을 외지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느끼게 되었달까. 그래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친구가 투덜거리기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는 게 좋아, 나중에 결혼하면 같이 있고 싶어도 같이 있을 수가 없잖아, 하고 달랠 정도도 되었다. 진학이나 직장문제로 따로 사는 것과 결혼해서 따로 사는 것은 분명 다른 점이 있겠지만,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없다는 것에는 다른 점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에이미 나이 또래에는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나이다. 12살이면 중학생 정도인데 부모님의 곁을 떠나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게다가 에이미에게는 지적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어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대신 동생 루앤을 늘 보살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속상하기만 하다. 때로 부모님께 투정을 부려보고도 싶지만 엄마는 늘 루앤의 편만 드는 것 같고, 아빠는 그냥 이런 걸 모른척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곳이 없어 에이미는 늘 외롭다고 느낀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날을 보내던 중 에이미는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엄마와 싸우고 고모가 잠시 기거하는 오래된 저택으로 향한다. 에이미의 사정을 들은 고모는 에이미의 아빠를 설득해서 에이미가 잠시동안 저택에서 머무르게 한다. 하지만 저택에 숨겨져 있는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되면서 더욱 괴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저택과 똑같이 만들어진 인형의 집, 그 인형의 집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인형의 집에는 어떤 비밀이 있으며, 이 저택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오래된 저택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과 유령이 깃든 듯한 인형의 집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부분도 흥미로웠지만, 에이미와 고모가 각자 마음에 지고 사는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더 흥미로운 작품이다. 에이미의 경우 한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의 가족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늘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짐처럼 생각되었던 루앤의 존재나 같은 딸인데도 차별받고 있다고 느꼈던 마음이 이사건을 통해 사르르 풀려간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에이미의 가족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에이미의 엄마는 루앤의 지적 장애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에이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루앤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루앤의 일을 모두 맡아서 해줄 수는 없다. 아직 루앤이 어리긴 하지만 언젠가는 성인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었을 때에도 가족이 루앤의 일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루앤이 할 수 있는 일은 차근차근 가르치는 게 맞겠지만, 여전히 가족들은 루앤이 자신들의 품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에이미의 엄마가 가장 심한데,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였다. 속마음은 두 딸을 모두 사랑한다고 할지는 몰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반대이기 때문이다.
 
고모의 경우 오래전 저택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수십년 동안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 끔찍한 일이 자신의 탓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고모는 이번의 일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마주했고, 그날의 진실을 알게됨으로써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중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고모였는데, 모든 것이 밝혀진 후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에이미의 상처도, 고모의 상처도 결국 가족문제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통해 그 상처를 회복시켜 나간다. 가족이란 그런 게 아닐까. 때론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더 큰 사랑으로 그 상처를 회복시켜 주는 존재. 물론 상처받을 일이 없으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아무리 사이가 좋아 보이는 가족일지라도 한두가지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무너진 가족 관계를 어떤 식으로 회복시켜 나가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 될텐데, 이를 현명하게 극복함으로써 더욱 단단한 가족애가 생겨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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