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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동화 - 전래동화 천 년 후 이야기
Horang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동화는 어린 시절에 읽을 때와 어른이 되어 읽을 때의 느낌이 무척 많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엔 순수하게 곧이곧대로 받이들일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뭔가 께름칙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인어공주만 해도 그렇다. 어린 시절엔 '이 얼마나 예쁜 사랑인가' 라고 생각했다면, 어른이 되어서 읽었을 땐 자신을 구해준 인어공주도 못알아 보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왕자를 보면서 이런 쳐죽일 X(또 과격한 표현이! 네, 그렇습니다. 전 이런 면에서 무척 과격해집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달까. 일종의 판타지가 와장창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겠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천년동화 - 전래동화 천 년 후의 이야기』는 기존의 판타지를 재구성하고 현실성을 덧입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발맞춘 색다른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新 견우직녀전 - 엇갈린 시선
어린 시절엔 견우직녀가 일년에 한 번 칠석때만 만날 수 있는 연인들이란 게 무척 가슴아팠다. 하지만 그들이 일년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견우직녀에 대한 판타지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자기들이 할 일은 안하고 놀러만 다녀서 그렇게 되었다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는 이야기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견우직녀전을 새롭게 구성한 '크로우맨'은 이름없는 만화가인 견우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직녀의 이야기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며 작품을 그리지만 번번히 출판사에서 퇴짜맞던 견우는 직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그려왔던 만화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중들의 수요에 발맞춘 만화를 그리게 된다. 그렇게 그녀 곁으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랑이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는 건, 사랑이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믿을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시선을 마주할 때이지, 서로의 시선이 엇갈릴 때는 아니다. 견우는 직녀를 바라봤지만 직녀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말부를 보면 견우의 사랑은 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라 나온다. 그것은 두 가지 착각이었다.
新 우렁각시전 - 이미 사랑이었다
난 우렁각시전을 보면서 나도 우렁각시가 되고 싶다기 보다는 나에게도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본인은 여자입니다, 쿨럭) 살림이나 요리는 관심도 없고 만사 귀찮아서 누군가 대신 해줬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야기는 사랑의 관점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비뚤어진 어린이였습니다, 전)
새로운 우렁각시전은 학창시절 집단따돌림으로 결국 학교를 중퇴, 히키코모리로 살고 있는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둘은 채팅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고, 남자는 여전히 대인기피증때문에 여자를 만나기를 꺼려하지만, 여자는 조금씩 그의 곁으로 다가오게 된다. 더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남자는 그 여자를 멀리 하기 시작하는데...
참 아이러니한 사랑이었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에야 사랑이 시작되었다니.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 이 남자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기억을 잃은 후에도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新 선녀와 나무꾼 - 사랑이라 쓰고 집착이라 읽는다
어린 시절엔 잘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읽은 선녀와 나무꾼은 어떻게 보면 남성의 이기적인 욕망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 그녀의 발을 지상에 묶어 버렸지만, 나중에 그녀가 날개옷을 발견했을 때 다시 천상으로 날아가 버린 것은 결국 나무꾼이 선녀의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증거였으니까.
선녀를 사랑하는 나무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리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나무는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deer80의 충고대로 그녀의 약점을 잡아 그녀를 붙잡게 된다. 약점을 잡아 사랑하는 이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욕심에서 이미 이 사랑은 빗나갈 대로 빗나가 버렸다. 결말이 어떻든 이 사랑은 비극일 수 밖에 없다. (작가님의 생각과 전 반대입니다)
新 박씨부인전 -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박씨부인전은 재미있게도 성형이란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못생겼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변호사가 된 한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수십번의 성형을 거듭한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낳은 희생자처럼 보여도 또한편으로는 새로운 인간상의 구현이기도 하다.
전래동화는 해석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지만 현대적으로 재구성될 여지가 무척 많다는 걸 여기에 실린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구나 싶은 느낌이랄까. 작화부분을 보면 색감이 무척 아름다웠는데, 특히 그것은 배경부분에서 특히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처럼 수채화 느낌이 물씬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