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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제목과 표지 사진을 보면서 한국의 아파트에 관한 내용이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읽었던 부동산 투기나 아파트 과열 경쟁, 그로 인해 양산되는 하우스푸어와 관련된 내용, 즉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아파트의 정치 · 경제적 문제에 대한 담론일 거란 선입관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목차를 읽어나가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본문을 읽어나가면서는 내 선입관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책은 내 생각보다 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국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정치 · 경제· 사회· 문화 · 역사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책은 픽션과 팩트라는 각각의 부제를 달고 총 2부로 나뉘어진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픽션을 보면 무척 흥미로운 시각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무척 추상적이다, 라는 생각도 들지만 곰곰히 뜯어 살펴보면 매우 구체적인 시각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선의 모험>은 마포 아파트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건설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모더니티란 개념이 처음 정착되기까지의 여정을 훑어보며 설명되고 있다. 처음엔 항공사진으로 시작해서 밀라노의 거리, 경성의 거리를 지나 마포아파트 건축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모더니티란 개념의 도입과 관련이 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아파트의 출현이란 종래의 전근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거형태의 도입이었기 때문이다. 반발과 수용의 시기, 그것이 바로 마포아파트 시대였고, 한국 사회의 현대적인 주거형태의 첫 정착지가 되었다.
<아파트의 자서전>은 아파트 자체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花樣年華>의 내용과도 맞물리는데 아파트를 처음 경험한 사람들이 아파트를 어떤 방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트가 어떤 식의 영향을 사람에게 주고 있는지, 아파트 생활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이런 부분은 아파트 문화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주거 공간이 변하면서 함께 변화한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파트가 어떤 식으로 현대적인 계층 사회를 만들어 나갔는지에 대한 것도 이 부분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영웅시대>의 경우에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그의 인생을 통해 아파트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제와 결합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사회 내에서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급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팩트는 앞에 나온 이러한 이야기를 사실적인 서술방식으로 보여준다. 픽션의 이야기가 조금은 추상적이었다면 팩트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내용의 서술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큰 흐름은 픽션의 것과 같다. 픽션을 읽고 팩트를 읽으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진달까.
한국사회에 있어서 아파트란 것은 단순히 하나의 주거문화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조국 근대화 사업 방안에 맞춰 탄생한 아파트는 우리의 삶은 크게 바꾸어 놓았다. 예전같으면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말을 썼겠지만, 지금은 내 아파트 마련의 꿈으로 바뀌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이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붐과 맞물려 일반인에게까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꿈을 꾸게 했고, 용케 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끝물에 걸려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을 가진 빈자(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아파트는 어떤 지역, 어떤 브랜드, 면적 등에 따라 다른 계층을 양산했고, 미래를 저당 잡아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단순히 면적을 넓혀 이사하는 재미가 아니라 몇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면서 그것으로 떼돈을 벌려는 투기 심리 또한 그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지나친 욕심은 미래를 위한 자리를 조금도 남겨 놓지 않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에 전해질 것이다.
이런 자기충족적 욕구는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어쩌면 1960년대 마포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계획했던 정부의 음모가 이제 그 틀을 완벽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아파트는 대개 획일화된 구조이기 때문에 각 가구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상품들이 개발되어 왔고, 그것이 또하나의 아파트 문화로 자리잡았다. 또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상권의 발달등으로 이어졌고, 가정의 생활양식 역시 많은 변화가 보였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산업 전반에 있어 급속한 발달을 가져온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반대로 상품회전율이 급속도로 빨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십년이상 쓸 제품을 이젠 채 5년도 쓰지 않고 바꾸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돈을 빨아들여 건설회사의 배를 불리고, 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돈주머니로 전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주의 의미가 아니라 소유의 의미로 변질되어 투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존재, 또다른 계층분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존재, 경기를 부양한다면서 건설회사의 배만 불려주는 정부의 경제 정책의 중심이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 한국의 아파트. 한국의 아파트는 언제쯤이면 원래의 목적에 근접한 구조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