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할리의 마차
히로아키 사무라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선『무한의 주인』의 작가로 잘 알려진 사무라 히로아키의 신작이다. 이『브래드 할리의 마차』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꽤나 많은 반감을 사고 있는 듯 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런 건 궁금해서 못참는다.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 (별로 안좋죠)- , 나 역시 읽고 나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떤 면에서 불편했느냐. 이 만화를 그린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 그건 후기를 봐도 마찬가지다 - 이 만화를 보면 일제시대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폭동과 소요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년에 한 번 고아원 출신 여자 아이들을 공급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무기수들의 성적 욕구가 폭력성으로 이어지기 전에 그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는데,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하다. 

수십명의 남자들이 고작 열서너 살 된 여자 아이를 집단으로 윤간한다, 라. 게다가 폭력성 정도가 높은 무기수일수록 여자아이에 대해 가하는 폭행의 수위도 높아진다. 이 여자아이들은 고작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약 일주일간 살아 있게 되면 독약으로 살해한 후 암매장한다. 설정을 보면 무척 잔혹한 이야기이다. 여성이란 존재를 물화(物化)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 아이들은 단지 수감자들의 성적 요구를 배출할 존재일 뿐이다. 끌려온 여자 아이들은 파스카의 양이라 불리며, 수감자들은 이 일주일간을 파스카의 축제라 부른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죄책감으로 그 사실에 눈을 돌려버리는 수감자도 있고, 끌려온 아이를 탈출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간수도 있다. 또한 파스카의 축제를 기다린 한 수감자가 파스카의 양이 되어 끌려온 자신의 딸을 데리고 탈출하려다 사살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 이 여자아이들의 고통을 무마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이런 행위는 정당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끌려오게 된 것일까. 책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브래드 할리의 마차를 타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귀족 가문인 브래드 할리家의 양녀가 된다는 의미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양녀가 아닌 파스카의 양이 되어 죽어간다. 브래드 할리의 양녀가 되어 브래드 할리 성공녀 가극단에 들어가 공연을 할 수있는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고아가 된 소녀들의 꿈이기도 했지만, 그건 꿈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꿈을 안고 브래드 할리의 마차를 타기 위해 서로를 해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도 있었고, 브래드 할리家의 양녀가 되었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라진 소녀의 이야기도 있었다. 매년 많은 수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선택되지만 브래드 할리家로 오는 아이들의 수가 턱없이 적어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이 책의 내용을 차곡차곡 뜯어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어둠과 악마적 본성을 그리고 있는 듯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결말부가 어수선한 데다가, 설정 자체가 불쾌해서 불편한 기분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가 후기를 보면서 또다시 불쾌해진 점은 이 작품의 의도가 "야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야한 만화가 될 수 있는 거지. 집단 윤간이 어떻게 야한 만화가 되는 거지?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다음엔 여고생이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데, 이 말은 불쾌함의 최고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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