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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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예전에 미니홈피를 운영할 때 랜덤으로 들어간 다른 사람들의 홈피에 인용된 시로 처음 만났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 홈피나 블로그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만날 수가 있었는데, 정작 책으로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고 예쁜 표지를 넘겼다. 

총 여섯개의 장으로 구분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수필, 시, 편지, 기도와 묵상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수록되어 있다. 시는 많이 접했지만 산문은 처음이라 수녀님의 다른 모습을 뵙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와 달리 수필이나 일기에 드러나는 수녀님의 모습은 뭐랄까 소녀적인 감성이 가득했다. 자신의 투병생활에 관한 일, 어머니에 대한 추억, 친구와의 추억 등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애정과 감사함, 그리움은 평범한 단어로 씌어져 있지만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렵고 난해한 단어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문인도 많지만 난 역시 이렇게 마음속의 경계를 확 풀게 만드는 쉬운 단어로 씌어진 글이 좋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글을 보면서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친구를 떠올리며 쓴 편지 일기를 보면서 난 고작해야 친구와 문자나 주고받을 뿐인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일기도 한참이나 쓰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대학시절까지는 매년 일기장을 사서 조금씩이나마 일기를 썼지만 그후론 일기는 커녕 다이어리에 일정조차 기입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수녀님의 일기에 담겨 있는 소박하지만 정겨운 일상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기록처럼 여겨져 괜시리 샘도 났다. 나도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일기로 적어 보면 매순간이 달리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오늘이 가면 어제가 된다. 지금이 가고 나면 과거가 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일상이라도 틀림없이 감사할 일이 있을테고, 화나는 일도 있었을테고, 기뻐했던 일도 있었을테고, 즐겁고 행복한 일도 있었을텐데, 난 그런 순간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수녀님의 글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수녀님의 수녀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 관한 이야기나 어머니, 친구,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수녀님의 인간적인 매력이 그대로 묻어나지만, 누군가를 위한 기도나 묵상에 관한 글을 보면 수녀님으로서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난 수녀님들을 볼 때마다 신에 귀의한 분들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보면서 그건 나의 선입관이란 걸 깨달았다.

또한 수녀님의 인맥에도 무척 놀랐다. 같은 종교에 귀의하신 분들과는 당연히 친분이 있겠지만, 종교를 넘어선 만남, 문인들이나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비롯해 우리같은 일반인들, 더 나아가서는 죄를 짓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에 이르기까지 수녀님의 행적을 밟아가다 보면 참 부지런하신 분이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많은 책들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메모와 일기, 편지 등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그러하기에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닐까.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글과 잘 어울리는 그림들도 참 좋았다. 또한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이해인 수녀님의 소녀같은 미소도 참 좋았다. 이렇게 미소가 해맑은 분이라서 글도 이렇게 해맑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평범한 단어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반짝임. 수녀님의 글은 꼭 그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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