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3
권김현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예전에 -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 우리말로 성(性)이란 것을 지칭하는 단어인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 너무 오래전이라서 - 섹스란 것은 일단 신체구조로 봤을 때 나뉘는 성별을 의미하며,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 이성애자), 호모섹슈얼(homosexual, 동성애자),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등에서 볼 수 있듯 사랑하는 대상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신체구조나 성별에 의문이나 위화감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신체적인 부분에 국한되는 성이다라고 대답했고, 젠더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용어에 사용되듯이 자신의 성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면을 볼 때 이는 정신적인 면이 중시되는 성이라 대답했다. (그 당시에는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섹슈얼로도 쓴다는 걸 몰랐다)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지만, 사실 이런 정의는 아주 소극적인 정의이며 협소한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남성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구별은 어떻게 가능할까. 생물학적 접근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역시 외부성기의 형태일 것이다. 어떤 구조의 외부성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며 그것이 모호할 경우에는 - 인터섹스의 경우 - 의사의 기준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생물학적인 성이란 것도 근거가 모호해진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성이라고 하지만 결국 이는 인위적으로 구분된 성이 아닌가 하는 담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식의 접근도 가능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여성이란 꼬리표가 붙게 되고 그 꼬리표에 따라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규범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젠더 규범이란 것 역시도 인위적인 성별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의 성으로 인간을 나누는 것일까. 태고의 인류는 모계사회로 시작했지만 정착을 하게 되면서 부계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그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힘이 더 센 남성쪽으로 기울어져가면서 남성위주의 사회가 되어 왔다는 것이 대체적이고 일반론적인 역사인식이다. 남성은 지배자,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인식이 확고해진 후 그후엔 남성들 사이의 차이와 차별이 생겨났다. 여성은 남성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에 밀려 버려 역사속에서는 거의 묻혀버린 존재로 격하된다. 그렇다 보니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할 때의 이미지는 우열이란 것으로 나뉜다. 대칭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열인 것이다. 결국 남성성이란 각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남성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할까.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 정신적 형질? 물론 그 의미가 맞긴 하지만 이것이 꼭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한 때는 남자애로 오인받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보자면 당시에는 나의 성별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어떤 남성성이 발현된 결과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남성성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난 고작 삼십여년을 살았지만 그 기간동안에도 - 남자와 여자의 차이랄까,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등을 자각할 수 있게 된 후로 - 사회가 원하는 남성상과 남성성이 아주 빠른 변화를 보였다는 걸 보면 남성성이란 불변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한해서 볼 때도 이럴진대, 범위를 더 넓혀 보면 남성성이란 것은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나라와 국적, 인종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는 성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들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정의처럼 내려져 있는데, 그에 딱 부합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 남성성이란 것은 남자들은 이래야 한다는 대략적인 범위를 정해놓고 그 범주에 들어가면 남성적이고, 그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면 여성적이란 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대를 상정해 놓고 보자면 시대에 따라 남성성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양반계층이 남성성의 일반적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을 숭상하고 무를 배격하는 이미지의 남성이 조선시대 남성성이었다면 일제시대의 경우에는 폐병쟁이이 허여멀건 얼굴의 남성들이 그 시대 남성들을 대표하는 남성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허약한 남성보다는 나를 지키고 부강하게 하는 무력을 숭상하는 남성성이 한동안 그 시대를 대표했을 것이고,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바람이 불어오면서부터 또다른 이미지의 남성성이 시대를 대표해 왔을 것이다. 요즘은 무슨무슨남이라 붙은 신조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데 이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다양한 남성상과 남성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남성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이렇게 바뀌어 왔다면 소수자들은 어떤 식으로 분류해야 할까. 사실 분류한다는 의미가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미리 깔아놓고 하는 생각이지만, 딱히 분류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되려나. 그들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라고. 

남장여자, 동성애자, 트랜스남성. 이들은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이다. 이들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일단 동성애자를 보면 게이이든 레즈비언이든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성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위화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각각 남성에 속하고 여성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장여자는 남성에 속하는 것일까 여성에 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사람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갈린다. 본문에 나와 있듯 <방림한전>의 남장여성은 남자로서 살았고 남자로 죽었다. 딱히 성전환을 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남성이었다. 이를 여성의 남성성이라 봐야 할까? 정신적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남성성이 발현되었다고 봐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이렇게 보자면 트랜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신체적 성과 정신적인 성이 불일치해서 고통을 받아왔고, 성전환등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성과 신체적 성을 맞추었다. 이들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앞서도 말했듯 정신적인 면을 우선으로 놓고 보자면 이들은 남성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남성이라 부르지 않고 꼭 다른 수식어를 붙인다. 사회규범의 허용범위를 넘는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소수자가 아닌 다수의 남성들 역시 자신의 남성성을 시험받고 있다. 마지막 담론인 신자유주의 이후의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부와 권력밖으로 밀려난 남성들은 루저가 되든지 사이버마초가 된다. 이 담론은 앞에 나온 여타의 담론과 달리 내게 큰 거부감을 주었는데, 특히 초식남과 사이버마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초식남은 먹는 입만 남은 동물적 입이고, 사이버마초들은 나름대로의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사이버마초들은 근육뇌와 배설할 입만 달린 머리에 여성을 소유물정도로 생각하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남성우월주의자이며 사이버공간에서만 기를 펴는 불쌍한 소수자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성적)소수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이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배설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걸 떠나서 생각해 봐도 난 이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앞서 나온 다른 담론들에는 대개 수긍을 할 수 있었지만, 이 담론에 있어서만은 '돈'으로 인생이 갈린 남성들의 이야기에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난 우리나라 남자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 하는 말이 정력과 군대라는 두마디면 다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이상하게 정력이란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정력보강을 위해 해외에 나가거나 이 음식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고 하는 등 이상하게 정력이란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난 티비를 보면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이 없으면 정력에만 자신의 남성성을 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겼다. 도대체 이런 발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상적인 남성성이라든지 이상적인 남성상의 변화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거의 불변하지 않는 법칙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자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성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군입대 문제로 이슈가 되는 연예인들은 우리나라의 또다른 남성성인 '군대'의 남성성을 외면했기 때문에 성토의 대상이 된다. 징병제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군대에 일단 다녀오거나 군대에 갈 예정인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매장하는 분위기이다. 대신 스스로 군복무를 선택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입장을 보인다. 지난 3월에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이 여전히 국민적 영웅처럼 대접받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로 여심을 잡았다면 해병대 입대로 남심을 장악했달까. 어떻게 보면 남성들이 현빈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것 역시 자신들의 실추된 남성성을 그가 보상해주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젠더 규범과 남성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그리고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여성의 젠더 규범에 따라 성장해왔기 때문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다양한 이면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젠더규범에 맞춰서 성장한다. 하지만 각각의 젠더규범이란 - 이 책에서는 특히 남성성이란 것으로 말해지지만 - 유일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말 자체가 없어지고 각 개체가 가진 인간성만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세상이 오지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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