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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 - 누군가의 이름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단어 이야기
존 베멀먼즈 마르시아노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난 공부를 할 때,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책 한 권을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시간만 들여다 보면 지친달까. 내가 하는 공부 역시 일단 시험 대비용이기 때문에 그런 수험서만 들여다 보면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그럴 땐 난 과감하게(?) 책을 덮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택한다. 그럴 경우 택하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이 아니라 - 한 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기 때문에 - 외국어 공부와 관련된 재미있는 책을 찾는다.
외국어와 관련된 책인데 재미있는 책이 어디 있나고? 잘 찾아 보면 꽤 많다. 수험서처럼 빡빡한 책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읽으면서 단어공부를 하거나 그 나라 문화에 대해 배우거나 할 수 있는 책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런 책은 교양서 정도로 읽으면 좋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된다. (그런 건 욕심이 지나친 거라 그러지요) 그래도 꽤 도움이 많이 된다.
『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은 사람의 이름에서 파생한 영단어에 관한 인문교양 영어단어책이다. 인문교양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단어에 관한 설명에서 그 단어의 어원이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짧지만 당시 역사 등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짤막한 토막 상식이지만 단어의 유래에 관한 설명으로는 딱 적당하다고 보여진다.
이 책의 원제는 Anonyponymous라고 하는데, 딱 봐도 길고 어려운 단어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어는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니까. 물론 이 단어를 만들면서 조합한 두 단어도 사실 어렵긴 하지만... 이 단어는 익명을 뜻하는 annoymous와 시조를 뜻하는 eponymous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Anonyponymous에 '익명의 시조(始祖)'라는 뜻을 붙였다. 이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의 기원을 찾아 그것과 함께 단어의 뜻을 설명한다는 뜻이다. 책의 제목에 나온 샌드위치 백작에서 먹는 샌드위치가 나왔듯이, 이 책에 수록된 단어도 처음 그 단어가 누구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럼 누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까. 여기에 수록된 단어들 중에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도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나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 희곡이나 문학 작품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 등 다양한 이름이 기원이 된 단어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도 있고, 어라라 이건 처음 보는 것인데 하면서 이런 기원이 있었군 하는 신기한 기분이 드는 단어도 많다.
나같은 경우 달력에서 월(月)을 뜻하는 단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이름, 요일을 뜻하는 단어는 게르만 신들에서 따온 이름이란 것이라든지, 입밖으로 꺼내긴 좀 쑥스럽지만 마조히즘이나 새디즘이 실존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란 건 알고 있다. 또한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처형한 단두대를 만든 기요탱이란 인물 등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실루엣도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니 깜짝 놀랐다. 그밖에는 개들에게 던져주고 물어 오게 하는 프리스비가 원래는 파이접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나 견종의 하나인 잭 러셀 테리어나 도베르만 핀셔의 이름이 사람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란 것을 보고 무척 재미있었다.
또한 기포가 나오는 욕조를 뜻하는 저쿠지와 관련된 따스한 이야기, 초대형을 뜻하는 점보와 관련된 안타까운 이야기를 비롯해 푸흡하고 웃음이 터질 만한 유래를 가진 단어, 조금은 민망하지만 의외의 수확이었어란 생각을 하게 해준 단어들이 무척 많다. 만약 단어와 발음과 뜻만 설명해 놨으면 정말 지루했을 테지만 저자의 유머러스한 글과 그림이 유쾌하면서도 즐겁게 재미있는 단어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연상으로 인한 기억은 기억이 꽤 오래 남는 편인데, 어쩌면 특이한 단어들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그외에도 단편 지식으로 다양한 모자의 이름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이름, 성서에 등장한 인물과 관련된 단어, 사람의 이름을 딴 요리, 슬랭등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슬랭은 예전에 슬랭만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역시나 재미있다. 욕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슬랭 속에도 역시 그 문화권만의 고유한 특성이 살아있기 때문에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 (내가 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욕을 할 때 알아 듣긴 해야 하니까 필요하고, 그리고 슬랭이 꼭 욕만을 뜻하는 건 아니라 은어도 많으니 꽤 재미있다) 이런 문화적 특성은 슬랭 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만들어진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원이 되어 만들어진 단어는 당대 문화를 반영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쓰이는 단어도 있지만 사멸 직전이나 다시 부활한 단어 역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부록 참조)
누군가의 이름이 기원이 된 단어도 이렇게 많다니!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인상적인 사람이었기에 단어까지 만들어질까 싶은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그럴수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공부를 하다 지쳤을 때, 소설처럼 긴 내용을 읽을 시간이 안나는 자투리 시간 밖에 없을 때, 이럴 때 단어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단어 사냥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