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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ㅣ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90년대 말,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심양에서 내려 연변 - 백두산 - 북경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그때 조선족을 처음 만났다. 조선족의 말투도 그렇고 북한과 인접한 곳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가이드나 한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서 그런지 그들의 생활은 우리와 별반 다름없이 느껴졌었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 국경 근처에서 아릿아릿한 아픔이 생겨났고, 그것은 두만강 근처에서 손을 씻고 있는 북한주민을 보면서 더욱 심해졌다. 결국 두만강 푸른물에~~하는 노랫가락에 눈물을 줄줄 쏟았던 적이 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만날 수 없었던 북한주민이었을지라도 내 동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1박을 할 때 식사 시간에 맞춰 조선족이 공연하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졌다. (솔직히 말해 난 개인적으로 관광지에서 누가 공연하는 걸 보면서 밥 먹는 것을 꽤 불편하게 생각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가운데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갓 잡은 송아지 고기를 구워먹으며 파티아닌 파티를 하는데 그들은 그 비를 쫄딱 맞으면서 공연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몹시도 불편했다. 그랬다. 그당시 조선족은 내게 있어 딱 그정도의 존재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몇 년이 지나면서 난 조선족들을 한국땅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대부분 여성으로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난 남자 조선족을 중국에서밖에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말을 섞지 않는 이상 조선족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별반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무심하게 지나쳤다.
난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한국에 나와있는 북한 사람처럼 느끼게 된달까. 아마도 그건 그들의 말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세상이었기에 뉴스에서 조선족에 관한 안타까운 뉴스가 나와도 뉴스를 볼 당시에만 안타까워하고 또 금세 잊어버렸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 올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나온 조선족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대접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때때로 뉴스를 통해 듣게 되지만 조선족 부모들이 중국땅에 두고온 아이들과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는듯 하다.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 조선족 특집이 나왔을 때 부모를 10년이나 못봤다는 이야기를 스쳐듣긴 했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만주에 사는 조선족의 수는 200만. 그중 40만이나 되는 사람이 한국에 와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네 쌍에 한 쌍 꼴로 이혼을 했다. 그들은 각각 재혼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고 그후엔 아예 한국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악착같이 벌어 다시 만주로 돌아가는 사람이 극히 드물며 돌아간다 해도 이혼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은 한국땅으로 돈을 벌러간 부모들에게 방임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3~4년은 기본이고 10년정도나 부모와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은 조선족 학교에서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커야 할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 일이 이런 사태까지 가버린 것일까. 아이들의 부모는 대개 3~40대로 그들의 아이들은 취학전 어린 아동에서 고교생까지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3, 4살 무렵에 부모와 떨어져 십대가 되어 부모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감이란 얼마나 될까. 그래도 돌아와주면 다행이다. 어느날 갑자가 연락이 뚝 끊기고 송금까지 끊기면 아이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일까.
한국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이 고생이라면, 이곳에 남은 자녀들은 고통이지요. (27p)
우리 가족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택한 한국행. 그것이 설마 비수가 되어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꽂힐 거라 생각하고 떠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한국에 나가보니 중국에 살 때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취해 핏줄로 이어진 자식을 끊어내 버리는 부모가 너무 많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남은 아이들은 사춘기를 일찍 겪고 너무나도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다. 부모가 모두 한국으로 떠나버린 경우 의지할 친지가 없으면 - 친지들 역시 한국으로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다 - 할 수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곳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남겨진 아이들은 다각도로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속출하고 있으며, 한족에게 의지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안그래도 조선족 문화가 한국 문화에 휩쓸려 휘청휘청하고 있는데 이젠 한족의 문화까지 그 자리를 넘본다. 학교에서도 조선어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문화를 꿋꿋이 지키며 존재해 온 조선족 사회의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부터 조선족들이 백 년 넘게 지켜 온 고유의 문화, 가족 윤리, 성 윤리가 일거에 망가졌다. (200p)
몹쓸 한국병은 한국에 돈 벌러 간 부모를 변화시켰고 조선족 사회의 독특한 문화 유산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한국을 좋아하면서도 증오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국 사회를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바람만 아니었으면, 부모와 헤어져 살 일도 없을테고, 부모가 이혼해서 버림받는 일도 없었을테니까. 또한 한국에 불어닥쳤던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이젠 만주에까지 불어닥친단다.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어간 사람은 어김없이 아파트를 산단다. 그래야 돈을 번다고. 한국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불순물만 가득 싣고 가는 바람이고, 한국병은 그냥 병이 아니라 속부터 먹어 들어가 결국 조선족 문화와 조선족 사회의 기반까지 침식하는 암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눈에서 더 큰 원망의 눈물이 터져 나오기 전에 부모님들께서는 하루빨리 돌아와 달라는 겁네다. 그 고생을 하러 가서 가정마저 깨져 버린다면 한국 취업은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크지 않겠습네까? (65~66p)
앞으로 10년 뒤 우리 학생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가족에 대해 뭘 좀 알아야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거 아닌가요? (82p)
좀 더 나은 살림살이를 위해,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으로 나간 조선족 부모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희생시킨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이런 문제때문에 희생된 가정과 남겨진 아이들이다.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지만 그것이 역으로 가정을 산산히 부서뜨리고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변했다면 이것이야 말로 본말전도가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아픔이, 눈물이, 고통이 부디 자식들을 만주땅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건너온 부모들의 가슴에 가닿았으면 좋겠다. 제발 남겨진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 나오면서 어떤 결심을 하고 나왔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가난해도 좋으니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따뜻한 밥을 먹고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