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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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전문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책을 고를 때 책소개를 유심히 보게 된다. 책소개 부분을 보다가 눈에 띄인 단 한 글자 '유령'. 난 그것만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엔 책 선택의 이유치고는 참 별 것 없어 보이겠지만, 유령이란 소재는 내게 있어 무척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는 무척 타당한 이유였다.

『나사의 회전』은 1898년에 발표된 소설이라서 고딕소설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순문학에서 유령이 어떻게 표현되고 유령의 존재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고딕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유령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고딕소설이 주는 섬뜩함이나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전혀 배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유령이 주는 공포나 유령 자체의 끔찍함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따라 그 공포가 배가되어 가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한 저택에서 두 아이의 가정교사가 된 스무살의 아가씨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이 수기형식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도입부가 있고, 그 다음에 수기가 등장한다. 이 수기의 화자는 자신을 고용한 아이들의 백부의 하인이었던 피터 퀸트와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제슬 양의 유령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외에는 다른 누구도 유령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가씨가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아가씨의 눈에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요즘 말로 하자면 영감(靈感)이 뛰어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가정교사는 유령을 목격한 후 유령이 노리는 것은 사랑스러운 두 아이라 생각하고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인간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는 것을 믿는다.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자신이 생각한 것을 믿는다. 유령의 존재가 있든 없든 가정교사의 눈에는 유령이 보였고, 그 유령이 아이들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퀸트나 제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가정교사는 아이들이 유령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내에서는 아이들이 유령을 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몇군데나 등장하기 때문이다. 밤중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거나, 정원에 나가 있다거나, 혼자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거나.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은 분명 아이들도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건 가정교사의 생각일 뿐, 아이들은 직접적인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다. 

고용인 중 한 명이 그로스 부인은 가정교사가 본 유령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지만 실제로 목격하지는 못했다. 가정교사의 말을 들으면서 차츰 그 이야기에 휩쓸려가게 되는 인물이다. 작품내에서 그로스 부인이 유령의 존재를 믿든 안믿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로스 부인 역시 사랑스러운 두 아이, 마일스와 플로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순진함과 천진함을 믿고 있는 두 사람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뒤에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그걸 긍정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에 넋이 나가버렸다고 할까. 실제로 남자아이인 마일스는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구체적인 이유가 끝까지 나오지 않는데, 가정교사나 그로스 부인은 마일스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잘못이라 믿어버린다. 이 아이들 역시 무척 흥미로운데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읜 탓인지 무척이나 조숙하다. 특히 마일스의 경우에는 어른들처럼 애매모호한 말을 하며 가정교사를 착각속으로 밀어 넣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턱대고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래 아이답지 않은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때때로 가정교사를 자신의 손바닥안에 쥐고 흔드는 모습까지 보이니까. 

이렇게 유령이란 존재와 유령이 아이들을 데려갈 것이란 두려움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이곳에 왔다는 자부심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란 책임감 등과 맞물려 가정교사를 궁지로 몰고 간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해 버리는 것, 그것이 그녀의 첫번째 과오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말수가 적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 입장에서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이 결국 커다란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르게 된다.

작품의 결말부를 읽으면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클라이막스에서 뚝 끊긴다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모호한 부분이 결국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끝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유령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가정교사의 심리적 변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단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결말이 더욱더 큰 임팩트를 가져오는 것이 분명하다.

이 뒤에 이 가정교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도입부에 그녀의 수기를 소개하는 더글라스란 인물에 의해 묘사되기 때문에 궁금증은 풀렸지만 좀 이상한 것은 그녀의 그후 행적과 그녀에 대한 더글라스의 감정이란 부분이었다. 그 부분의 위화감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수기에 남긴, 그당시 블라이에서 벌어졌던 기묘한 일에 관한 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섬뜩했다. 하지만 잊으면 안되는 것은 수기란 것은 편지처럼 화자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기에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목격했던 유령의 존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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