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 열두 가지의 거짓, 열두 가지의 진실
아사노 아츠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아고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국내에서는 배터리로 잘 알려진 작가 아사노 아츠코.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지만, 기담이란 소재를 좋아해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일본원서 제목은 부제로 나와 있는 '열두 가지의 거짓, 열두 가지의 진실'이지만, 어감상으로는 기담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일단 표지를 보면,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보인다. 팜므파탈이랄까. 어쩌면 책내용도 그런 내용이려나 하는 상상을 하며 첫장을 넘겼다.

첫이야기는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의 여인과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갑자기 현대로 시간을 뛰어 넘는다. 작은 마을에 사는 한 노파의 이야기이고, 노파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중세를 배경으로 한 한 왕국의 왕비와 시녀 츠루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총 2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노파의 이야기와 왕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나오는 것이었다. 호오라, 독특한 구성이군.

노파의 이야기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형식이고 왕비의 이야기는 쓰루라는 시녀의 말에만 귀기울이던 왕비가 어떤 식으로 몰락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형식이다. 옛날옛날 한옛날에~~라는 그런 느낌이랄까. 세치 혀로 왕비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츠루를 보면서 소름이 쫘악 끼쳤다. 츠루가 아무리 달콤한 말, 듣기 좋은 말을 늘어 놓는다 해도 왕비가 자신의 중심을 잘 잡았으면 그런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여기에서의 츠루란 존재는 인간의 마음을 파고 들어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그런 존재이다. 물론 츠루를 진짜 인물로 봐도 상관없지만 나같은 경우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악한 욕망이 구체화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보면 노파의 이야기와의 연결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츠루의 존재보다 더욱 소름이 끼치는 건 노파의 정체였다. 호오,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었달까. 물론 노파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역시 타인의 약점이나 어두운 부분을 야금야금 먹어간다. 그렇다 보니 노파가 나중에는 완전한 인면창이 되어 버리는 것도 납득이 간다. 사람의 마음을 지배한다는 인면창, 노파의 행동이 말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인간에게는 누구나 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또한 누구나 어두운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든 그 약한 부분에, 어두운 부분에 침식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때로 그런 유혹에 흔들릴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일단 그것에 마음을 먹히기 시작하면 왕비처럼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밖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의 세치 혀가 아닐까. 츠루가 왕비를 파멸로 이끌었던 것처럼, 노파 역시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를 원하고 있고, 그리고 여전히 그러고 있다. 그리고 이젠 그 역할을 다른 이에게 물려주려 하고 있고, 그 누군가가 반드시 그 역할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그 세치 혀에 놀아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것이다. 아무리 세치 혀가 농락하려 한다해도 스스로의 중심을 잘 잡고 어둠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츠루의 저주에서 벗어날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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