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달님, 달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난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었다. 정월대보름이나 추석처럼 특별한 달이 뜨는 날은 어려운 소원을, 보통의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가벼운 소원을. 물론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자체에 대한 집착은 없었지만 그게 어느새 일종의 일상이 되었더랬다.

내가 어린 시절에 빌었던 소원은 -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습지만 - 단 1년이라도 개근상을 받고 싶어요(초등학교부터 고교졸업까지 개근상은 한 번도 못받았다. 매년 며칠씩 아파서 결석을 했기 때문에), 잘 생기고 공부 잘하는 남자 아이가 짝이 되게 해주세요라든가, 쪽지 시험에 내가 아는 것만 나오게 해주세요라든가 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유기동물들의 숫자가 줄었으면 좋겠어요나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의 숫자가 줄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부터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등의 다소 욕심이 넘치는 소원을 빌었지만, 그래도 그냥 소원을 비는 건데 어때, 하는 마음이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스스로의 소원이 달님에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거라 생각했다. 보름달에 소원을 빈 이유는 보름달은 둥그래서 어떤 소원을 빌어도 받아줄 것 같아서이고, 밤에만 소원을 비는 이유는 소원이란 건 원래 몰래 빌어야 더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서였다.

어쨌거나 소원이란 것은 자신의 소망인 것이기도 한데, 아이때와는 달리 어른이 되면서는 스스로가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소원이나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나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에 빌었던 소원도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절망스럽고 화나고 분노할 때는 못된 소원을 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소원은 저주나 다름없어서 자신에게 꼭 돌아온다는 말에 슬며시 그런 소원은 빌지 않은 셈치기도 했지만.

『달과 게』에 나오는 세명의 아이들에겐 각자의 고민과 짐이 있다. 어린아이가 지기엔 조금은 무거운 짐이랄까. 신이치는 전학생으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뿐더러 1년전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신이치의 엄마는 요즘 남자를 만나는 눈치라, 신이치의 마음이 더욱 불편해지고 있다. 하루야는 경제적 어려움과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소년이며,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전학생이라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나루미의 경우 10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사고는 신이치의 할아버지의 배를 탔다가 일어난 사고라서 그것때문에 한참을 고민했고, 지금은 아버지가 재혼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서로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은 누구하나 자신의 아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꾹꾹 누르고 있기만 했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산속에 있는 바위틈에 소라게를 키우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처음엔 그저 소라게를 키우는 재미였지만, 그것이 시들해지자 신이치와 하루야는 소라게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의식을 치룬다. 소라게를 소라검님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처음 소원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 소원은 점점 잔혹하게 변해갔다. 소라게를 소라검님이라고 신격화하지만 결국 소라게를 제물로 바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의식에 나루미가 끼어들게 되면서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는 미묘하게 변해간다. 나루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신이치는 나루미가 하루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질투때문에 우정이 무너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미묘한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원래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털어 놓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의식행위가 그것을 묶어주었는데 그것마저 틀어져버린 것이다. 이후, 아이들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져버리고, 소원의 강도도 점점 세져서 신이치의 경우 엄마가 만나는 남자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뱃속에 이상한 것을 키우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신이치는 자신의 마음 속에 괴물을 키워가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또다른 모습, 괴물같은 모습이었고 그것을 통해 신이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괴물이 폭주하는 것을 일단 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후의 신이치의 변화는 별로 없다. 나루미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과 말이 달랐던 걸 인정하는 걸로 바뀌게 되지만 더이상의 변화는 없다. 성장했다고 말하기엔 뭔가 미묘하게 결여되어 있달까. 신이치네가 이사가서 다행이란 나루미의 말에, 솔직히 말해 소름이 끼쳤다.

신이치와 나루미의 공통점은 자신의 엄마와 아빠의 애정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은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하고 사랑도 독차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신이치가 만약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나루미가 만약 아빠의 마음을 헤야렸더라면 그런 소원을 빌고, 그런 말을 하며 해맑게 웃을 수 있었을까. 이 아이들은 결국 껍질밖으로 나오지 못한채 자신을 둘러싼 껍질, 덧붙이자면 신이치는 엄마와의 결속, 나루미는 아빠와의 결속이라는 껍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이 아이들은 언제쯤 어른들도 자신처럼 약하다는 걸 깨닫게 될까. 어른들 역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존재란 걸 깨닫게 될까. 그때가 되면 지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라고만 치부하기엔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진다. 오히려 이 작품속에서 부쩍 성장한 것은 하루야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맞선 하루야가 깨달은 것은 '어른들도 약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린아이기 때문에 약하지만 강해보였던 어른들도 약하더라는 하루야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작품은 주로 신이치의 행동과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렇다 보니 나루미나 하루야의 문제점이나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는 서술이 적은 편이라 좀 많이 아쉬웠다. 특히 아동학대와 관련된 하루야의 이야기가 하루야가 상처입은 모습이 밥을 굶고 온 모습등으로만 묘사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하루야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여겨졌는데 말이다. 신이치나 나루미의 겨우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재혼을 할거란 두려움이 일단은 제일 큰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초등학생인 신이치나 나루미의 경우 자신만에게 향했으면 바라는 애정이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못내 두려웠겠지만, 그게 하루야의 문제보다 더 심각했을까. 하루야의 문제를 좀더 다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하루야의 문제는 결말부에서 잠깐 언급되고 끝나버렸다.   
 
『달과 게』는 이제껏 미치오 슈스케가 내놓은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가 확연하게 존재한다. 물론 전작에서도 아이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중심 인물이 되는 소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오컬트적 요소가 존재했었고, 그것으로 인해 결말부가 미진하게 끝나버리는 것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 작품은 결말부는 깔끔하게 맺어진 듯 하지만 그래도 뭔가 가슴속에 응어리가 남는 기분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이에 비춰 이들이 이야기를 읽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른들을 너무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미치오 슈스케가 오컬트적인 미스터리나 추리 형식을 탈피해 순문학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할지라도 아직은 첫걸음에 불과하니 그정도는 눈감아 주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