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의 책 없는 방학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66
힐러리 매케이 지음, 지혜연 옮김, 김영미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에 몹시 자주 아팠던 나는 6살 때 두 번의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그때 외삼촌들에게 선물받은 건 책과 마론 인형이었는데, 그후로부터 난 그 두가지에 집착을 했었다. 바깥에서 잘 놀지 못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입학도 한달이나 늦게 하는 바람에 친구들을 사귀지도 못했고 - 원래 누군가와 잘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 - 그런 이유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여자아이가 집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마론 인형을 가지고 논다거나 책 읽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때로 시골 할머니 댁에 가야 할 때면 굉장히 싫었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었고, 컴퓨터는 커녕 티비도 잘 안나오는 깡촌에서 내가 즐겁게 놀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가용이란 개념도 없었을 때라 한시간 정도에 한 번 오는 복작복작한 버스를 타고 시골집 근처에 내려서 또다시 20분정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니 인형이나 책같은 건 가지고 갈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다.

결국 난 시골에 갈 때마다 툴툴거렸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후에는 시골에서 즐겁게 놀곤 했다. 모험이랍시고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타거나 바위에 올라가거나, 잠자리나 개구리를 잡거나 등이 전부였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 그 추억들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아이라면 어느 정도 시골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맨발로 흙도 밟아 보고, 봄여름에는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 곤충도 관찰하고 처마밑에 둥지를 지어놓은 제비도 구경하고, 논에 낳아 놓은 개구리알도 구경하고 올챙이도 구경하고, 때로는 우렁이도 잡고 강가에 가서 피래미 낚시도 하고. 가을이면 누렇게 여물어가는 곡식을 보기도 하고 빨갛에 익어가는 사과며 감, 그리고 툭툭 떨어지는 밤을 줍고, 겨울이면 비료포대에 짚을 가득 넣고 뒷동산에서 눈썰매도 타고. 짤막짤막한 시골행이었지만 그 시간을 난 엄청 즐겁게 보냈다. 요즘은 이런 것들이 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자연과 시골의 자연그대로의 자연 풍경은 전혀 다르다. 

루스, 나오미, 레이첼 그리고 피비와 네자매와 이들이 여름방학을 보낼 곳에 계신 왕할머니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책벌레에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건방지며 반항적인 네자매는 어른인 내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애들이다. 어른이 한 마디를 하면 열마디로 대꾸하지를 않나, 예의도 없고, 사고치는 데는 일등이다. 여자애들인데 이거 남자애들이나 마찬가지 아냐, 싶을 정도다.

이런 네자매가 여름방학동안 왕할머니(실제로는 외할머니) 댁에 가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 네자매에게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든 안가려고 버티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간 네자매는 왕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불편하기만 하다. 게다가 그곳엔 네자매가 좋아하는 책이 한 권도 없다니! 도대체 6주나 되는 긴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내란 말인지.

처음엔 불만으로 가득 차 뭐든 시큰둥했던 네자매는 등산, 바닷가에서의 수영, 동굴탐험 등 자연을 가까이 하는 모험을 하면서, 그리고 그곳에 있는 또래 소년과 어울리고 티타임 파티에 초대받는 등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점점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동물뼈 모으기를 좋아했던 루스는 자신이 케이크 만드는 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늘 구석진 곳에 숨어서 책읽기만 즐기던 나오미는 밭을 갈고 채소를 가꾸는 일을 통해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배운다. 레이첼과 피비 역시 야외활동을 통해 활동적인 또래 아이로 변하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권장할 만한 일이고 책에서 배우는 것도 무척이나 많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책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분명 있게 마련이고, 직접 자연을 접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네자매는 분명 책읽기는 좋아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예의, 그리고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것은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6주동안의 여름방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을 익혀나갔다. 물론 처음엔 왕할머니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빈번하게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사고를 치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이 가장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또한 이 네자매가 나중에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시골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에는 가기 싫어했던 할머니댁이고 만나기 싫었던 할머니지만 할머니와 손녀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미운정 고운정이 폭폭 쌓여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네자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자신들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에게 소중한 것이 책만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이랄까.

네 자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많이 떠올려봤다. 물론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추억들은 행복했던 시절이란 꼬리표를 달고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건 아마 이 네자매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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