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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지음 / 누룩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땐 판타지가 애들이나 보는 것쯤으로 치부했었지만, 요근래에 들어서 판타지란 장르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작품이 바로 이것인데, 읽으면서 완전 반해버렸다. '마법과 드래곤에 가려졌던 판타지 장르'란 책 띠지의 표현처럼 판타지라고 하면 마법이나 드래곤이 나오는 게 정석이었다. (꼭 그게 아니라면 그 비슷한 것, 뱀파이어, 늑대인간, 그밖의 환수 등) 물론 그런 것도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떨 때는 너무 판타지 삘이 나서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다. 판타지이지만 약간은 현실적인 맛이 그리웠달까. 그럼 판타지를 왜 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뭐 본인 나름의 취향이니.... (아하하)

각설하고!
표지에 보이는 할배 설씨는 콘크리트로 덮여버린 마을에서 유일하게 나무와 화초를 키우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근데 그게 정도가 너무 심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불만이 나오는 듯 하다. 함께 살고 있는 조카마저 화분을 다 가져다 버린다고 협박(?)할 정도니이까. 사실 조카의 불만은 마을 사람들과 달리 설씨가 사람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고 나무만 끼고 산다는 것이다. 결국 조카딸은 직장문제로 설씨의 집을 떠나게 되고, 혼자 남겨진 설씨. 여전히 나무와 화초를 가꾸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지만, 설씨의 집에 불만을 가진 한 남자가 설씨의 집에 불을 지른다.

요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시력을 잃고, 의식마저 잃어버린 설씨. 그가 눈을 뜬 곳은 '언덕'이라는 곳으로 세상 모든 나무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로우라는 나비 아가씨는 설씨에게 다섯개의 중요한 사실을 전한다. 당신이 예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이 다섯가지를 꼭 지키란 것. 설씨는 무사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아라는 소녀가 다스리는 '언덕'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숲이다. 무아는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며 그녀의 정원을 가꾸도록 한다. 원래 정원사 출신에 나무와 화초라면 끔찍한 설씨가 정원사로 맞춤하겠지만, 육신을 저쪽 세상에 두고 온 설씨를 무아가 강제로 잡아둘 수는 없다. 일단 무아를 피해 도망을 하다 아본과 주밤을 만나 함께 언덕을 탈출하기로 하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인간을 공격하는 식물, 나무의 저주가 서린 아본, 저쪽 세상으로 도망친 자를 아버지로 둔 주밤 등 이들의 내력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이들은 힘겨운 순간들을 극복하면서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그런 사이 동지애가 쌓여간다.

등장인물이 꽤 많지만 중요 인물을 놓고 볼 때 나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설씨와 아름답게 가꾸는 것에만 집착하는 무아는 굉장히 대조적인 인물이다. 설씨가 숲 속을 헤매고 다녀도 식충식물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무아는 어떻게 이곳에 왔고 무아가 놓아주지 않는 로우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그리고 '언덕'이란 장소는 결국 어떤 장소를 뜻하는 것일까. 아직 몇가지의 수수께끼가 남아 있고, 설씨의 모험도 끝나지 않았기에 뒷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마치 일본의 주카이(樹海)를 보는 듯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기만 하는 숲. 하지만 어느 것에든 경계가 있게 마련이다. 언덕에서 저쪽 세상으로 도망간 '미스터 헤븐'처럼 설씨와 아본과 주밤은 저쪽으로 갈 수 있을까. 그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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