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귀족 1 세미콜론 코믹스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철의 연금술사』(본인은 극장판 애니메이션만 봤습니다)와『수신연무』(1권을 보려다 말았습니다)로 유명한 만화가 아라카와 히로무. 그녀가 만화가가 되기 전 홋카이도에서 7년간 농업에 종사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추억이 만화로 탄생했다. 리얼 홋카이도 농가 에세이 만화랄까. 직접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를 깨알같은 에피소드가 꼭꼭 들어찬『백성귀족』제 1권.

작가의 집안은 홋카이도에서 3대를 내려오며 농사와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가 개척한 땅을 할아버지 - 아버지가 이어서 농사를 짓고 젖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난 홋카이도라고 하면 야생동물의 천국, 4월까지 눈이 오는 혹한의 겨울, 풍부하고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한 곳이란 것 밖에 모른다. 그런데 농사라니. 그렇게 추운 땅에서도 농사가 잘 될까 싶었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일본 전체 식량자급률이 40%도 못미치는데, 홋카이도 토카치의 경우 자급률이 1,000%을 상회한다니. 이정도면 일본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 4개현의 주민들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도저히 상상도 안되는 수치다. 재배되는 것도 다양해서 감자, 감채류, 옥수수와 쌀 등 육지에서 나는 작물을 비롯해 해산물 역시 자급률이 몇 백 퍼센트에 달한다. 게다가 낙농업이 발달해 우유와 쇠고기도 많단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알다시피 이런 1차 생산물은 시장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우유가 남아 돈다고 생우유를 폐기하거나 멀쩡한 소를 도축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소비자들은 예쁘고 잘생긴 야채나 과일만 찾다 보니 무리하게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많다. 특히 태풍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정말 어이없을 지경이라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요즘 우리나라도 구제역 파동때문에 육우는 물론이고 젖소며 돼지, 염소등이 살처분된 후 고기값 폭등, 우유생산량 감소등으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여기엔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우유생산량이 많으면 우유를 버리거나 소를 도축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니 목장이야기는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비정하다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다들 알다시피 가축은 상품이다. 경영에 보탬이 되지 않을 시에는 서둘러 처분하지 않으면 일손과 먹이 값 등 적자가 늘어날 뿐. (80p)

그렇다. 우리는 젖소를 보면서 꺄꺄 거리면서 좋아할지는 몰라도 축산농가에 있어 젖소는 상품일 뿐이다. 물론 기른 정도 있겠지만, 워낙 덩치가 큰 동물이기 때문에 우유 생산을 하지 못하거나 병이 들면 도축할 수 밖에 없다. 작품 내에서도 태어나면서부터 척추를 다친 송아지가 결국엔 죽은 소들과 함께 실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반려동물이라면 어떻게든 고치고자 하겠지만, 가축과 반려동물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다르단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상품가치가 없는 젖소들은 도축되어 동물사료나 식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집 개들은 닭고기 사료나 양고기 사료를 먹습니다) 식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햄버거 패티를 만들 때, 즉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햄버거 패티는 대부분 젖소고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젖소의 경우 숫소는 번식용으로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어느 정도 성장하면 육우용으로 팔려간다. 이 또한 축산업의 잔인한 현실의 한 단면이다. 내가 사는 지방에도 도축장이 한 곳이 있는데 어느 날 운전을 하고 가다가 소를 가득 실은 차가 그 도축장쪽으로 가는 걸 목격한 후 한동안 쇠고기에 손도 못댔던 기억이 난다. 소들은 자기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다 안다고 한다. 그걸 보면 정말 육식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또 고기를 먹고 있는 나란 인간은... (이야기가 좀 새긴 했지만 고기 이야기니까 잠시 해봤습니다)

음. 그리고 홋카이도 하면 야생동물이 많기로 유명하다. 불곰, 홋카이도 사슴, 북방여우, 줄무늬 다람쥐등은 때로 농작물을 습격하거나 가축을 습격하기도 하는데, 이럴 땐 가차없이 사살이다. 사실 우리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피해를 주면 얼마나 준다고 그러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밭이나 목장에 갑자기 곰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만달까. 공존이란 걸 강조하고 싶지만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눈을 돌리고 싶은 현실이나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만 나오면 빵빵 터진다. 특히 한겨울에 송아지 받으러 나갈 때의 복장. 푸하하핫. 미친듯이 웃어버렸다. 나중에 진화를 하긴 했지만 그게 더 웃겼다. 게다가 농업고교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어린 시절의 추억담 등 깨알같은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오면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정말이지, 농축산업에 종사한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그리지 못할 만화.『백성귀족』은 리얼함이 생명이고 코믹함이 부록이며,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농가의 진정한 실태에 대한 묘사가 중심인 만화다. 다음권도 기대기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