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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 1 - 마천루(절판 예정)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진수 옮김, 카키노우치 나루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다나카 요시키의 노벨은『창룡전』을 읽은 후 무려 10년도 더 지나 읽게 되었구나. 사실 노벨류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라서 멀리 했는데, 최근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이 실린 미스터리 앤솔로지를 읽으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달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해서 그쪽을 많이 읽는 편인데 가끔은 가벼운 느낌의 책도 읽고 싶달까. 그럴 때 읽으면 딱인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는 <마천루>라는 장편과 <여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마천루>는 도쿄만에 위치한 '베이 시티 플라자'에서 일어난 괴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찰청 고위간부들이 잔뜩 모인 이곳에서 갑자기 수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기기오작동이라고만 생각했으나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희생자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마천루>는 대리석 속에 산다는 요충(妖蟲) 발레오로자키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발레오로 뭐시기란 요충은 돌 속에 살면서 기괴한 일을 일으키는데 포악하기 그지없는 일을 벌인다. 이 요충을 박멸(?)하기 위한 야쿠시지 료코의 고군분투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물론 더 고생하는 건 료코의 부하 직원인 이즈미다 준이치로이지만. 그래도 료코의 박식함이 없었더라면 범인(?)의 정체파악도 힘들었을 것 같으니 어쩌겠어, 그대가 참아야지.
근데 궁금한 게 있다. 내가 대충 읽고 지나쳐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빌딩 벽에 '미나고로시'를 쓴 건 누구지? 설마 발레오로 뭐시기? 그런 요충이 사람 말도 할 줄 아는 건 아니겠지. 결국 약간 찜찜함이 남아 버렸다.
<여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료코의 집안 이야기 -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 이야기 - 와 관련된 이야기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고 가느다랗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하여튼 이번엔 마법의 물감이라는 육식성 미생물이 등장한다. 역시 이 또한 료코의 박식함이 빛을 발휘하는 에피소드.
예전같으면 -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 료코같은 캐릭터가 진짜 싫었을 것 같다. 뭐랄까, 질투랄까. 멋지고 잘난 남자는 좋은데 멋지고 잘난 여자는 눈꼴시다,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했을 거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내가 딱 그 짝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여성 캐릭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경찰조직이란 건 관료사회의 정형을 보여주잖아. 특히 굳어버린 머리의 영감들이 좌지우지하는 조직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회의에 또 회의다. 회의주의자들! 경찰이 그렇게 바글바글 모여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일을 수행할 인물은 별로 없다니. 일본 경찰들의 한심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달까. 이런 남성중심의 관료사회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야쿠시지 료코란 인물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캐릭터가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달까.
캐리어와 일반 경찰로 나뉘는 일본 경찰 조직은 매우 흥미롭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경찰조직은 독특한 면이 많은 듯. 그래서 경찰 관련 이야기가 많은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떤 장르이든 장르 불문 경찰 이야기는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이런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면 더 재미있고. 하여튼 안하무인이지만 뛰어난 머리와 상황판단능력으로 사건을 쾌속으로 해결하는 야쿠시지 료코를 보면서 통쾌했다. 물론 거기엔 일본 특유의 유머 감각도 빠지지 않는다. 예전엔 일본 특유의 유머랄까, 그런게 참 낯설었는데 이게 적응되면 의외로 아주 재미있단 말이지. 호홋.
오컬트 분위기의 괴사건과 더불어 전례없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흥미로운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 일단 입수되는 대로 주욱 읽을 계획. 이미 절판된 것도 많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