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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항시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존재이다. 기본적인 생존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린다. 좀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욕망, 더많은 재화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 등은 집착으로 번지기도 한다. 인간의 이런 욕망은 분명 인간 세상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키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추접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때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끝없이 어딘가를 침탈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번성해 왔다고.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전쟁은 비단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작은 나라안에서도 작은 도시 안에서도 언제든 벌어진다.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의 욕망에 휩싸여서.
장원두는 '마사오'의 부고를 듣고 5년 만에 고향마을을 찾는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부분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그러한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마사오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인물로 원래 이름은 정부(正夫)이지만 '마사오'로 계속 불렸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집에 태어난 '마사오'는 주먹과 의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신화와 전설처럼 각색되고 채색되었지만, 누구하나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있어 왕이었고, 어른들에게 있어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영웅의 말로는 비참했다. 텅빈 장레식장. 흩뿌리는 비는 그 쓸쓸함을 더한다.
장원두는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오랜 노장들을 만난다. '마사오'를 따랐던 인물들은 이제 늙수그레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 쓸쓸한 분위기에 한몫을 더한다. 장원두는 그들을 보며 '마사오'를 추억한다.
'마사오'는 스스로 권력을 지향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때때로 싸움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일화는 자연스럽게 각색되고 미화되어 하나의 영웅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그것 역시 '마사오'가 스스로 추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영웅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바람에 딱들어 맞았던 인물로 '마사오'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마사오'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영웅으로 존재해왔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마사오'를 따르는 인물도 생겼을 것이고, 이것이 점점 하나의 조직처럼 변해갔을 것이다.
이런 '마사오'를 동경해 왔던 사람들 중 한사람인 조창용는 '마사오'가 되고 싶어했다. 몇년 간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온 조창용은 서서히 '마사오'를 압박해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이 도시에서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사오'를 언젠가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창용은 술집과 도박장을 경영하며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 이름만 남은 영웅 '마사오'를 완전히 짓밟기로 한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하지만 그 벌이었을까. 조창용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가고 만다.
그후 늘 2인자로 존재하며 자신의 안위만 살피던 박재천과 1인자가 되기를 꿈꾸는 황포가 대립하기 시작한다. '마사오'의 존재가 희미해진 지금 황포는 대경과 손잡고 바깥 세력을 끌여들여 이곳을 완전히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박재천의 세력은 미미하지만, 여전히 '마사오'를 추종하는 인물들을 포섭하여 외부로부터 안을 지킨다는 것을 내세워 황포의 계획을 무산시킨다. 재천이 한 일은 자신의 특기인 '소문내기'와 폐쇄적인 마을 분위기를 잘 융합시킨 것이었다. 즉, 2인자이자 참모꾼으로서 살아 온 이력이 그 힘을 톡톡히 발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황포의 경우 새로운 세대를 영입하고 외부의 돈과 힘을 끌어들이려 했다 거꾸로 재천에게 당해버렸다. 이는 여전히 이 도시에 남아있는 '마사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재천은 '마사오'를 넘어서려고도 하지 않았고, '마사오'를 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마사오'를 대신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조창용과 황포가 박재천에 패배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것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창용이 몰락했듯, 황포가 뒷통수를 맞고 나자빠졌듯, 박재천의 입지 역시 단단하지는 않다. 그가 지금 이름을 빌어 규합한 세력들은 이미 은퇴할 나이가 가까웠고, 박재천의 인물됨됨이나 그릇 또한 1인자가 되기에는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박재천 역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게 될 것이다. 권력이란 그러한 게 아니던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특히 이런 비열한 수로 권력을 잡은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마사오'의 경우에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에 오랫동안 전설적 존재가 되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런 영웅의 시대는 가버렸다. 이제는 비열한 자들이 권력을 잡고 남용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낭만의 시대는 가버렸다. 하지만 의문이 솟는다. 정말 '마사오'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까. 우리는 각색되고 미화된 '마사오' 영웅담을 알고 있을 뿐 '마사오'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늘 과거를 추억하며 산다. 그 과거에 덧칠하고 채색하며 살아간다. '마사오' 뒤에 나타난 조창용이 그렇게 비열한 술수를 쓰지 않았다면 조창용은 또다른 '마사오'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남자들이 중심이 되어 권력을 쟁탈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중 세희란 인물은 여성임에도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로 보인다. 장원두의 첫사랑이지만 박재천의 아내가 된 세희. 세희는 조창용과도 관련이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조창용의 교통사고 당시 세희도 그 옆에 있었지만 조창용만 죽고 세희만이 살아 남은 것으로 나온다. 그후 세희는 박재천의 여자가 된다. 어쩌면 세희는 스스로 권력을 잡을 수 없어 재천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그녀가 원두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원두가 소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원두는 말한다. 자신은 역사가라고. 정사가 아닌 야사를 쓰는 역사가라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장원두가 들었던 '마사오'에 대한 전설적 일화며, 조창용의 이야기, 박재천의 이야기 등은 모두 나름대로 각색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사오'가 죽었고, 조창용이 죽었고, 이제 그 뒤를 이어 박재천이 새로운 권력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진실로 위장한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갈 뿐. 그리고 그 추억에는 늘 '마사오'가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원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배하며 살아갈 것이다.
장원두의 회상이나 그가 가진 기억, 그가 들은 이야기와는 별개로 난 이 책에서 한국 현대사를 얼핏 엿보았다. 장원두는 1950년대 말즈음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유신정권시대, 5공시대, 그리고 문민정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책 속에서는 4공화국이니 5공화국이니 하는 표현은 없지만, 막걸리를 좋아한 대통령이나 계엄령등의 표현을 통해 짐작을 해 볼 뿐이다. 그런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에 슬며시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작가의 재치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중에서 유신정권시대의 박정희와 5공시대의 전두환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자 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 무너져내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도 권력싸움은 존재했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암살이나 무력동원같은 무자비한 방법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권모술수의 시대가 되었다. 언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몰라 불안할지라도 인간은 영원히 권력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독인지를 잘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