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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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철학의 철(哲)자만 나와도 고개가 설레설레, 시선은 먼 산이 되는 사람이다. 역사 전공이지만 서양철학사는 전공 필수 과목이었던지라 공부를 해야 했었지만, 도대체가 근본부터 이해하지 못하겠더이다. 수업시간에는 그저 교수님이 칠판 가득 필기해 놓은 걸 베껴쓰기에만 바빴다. 시험을 위한 철학 공부는 그저 주입식 교육에 불과했다. 솔직히 이런 말하기 참 힘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분이 서양철학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를 하고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명의 철학자에 대해 연구하는데, 내가 들었던 서양철학사는 말그대로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철학자들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철학자의 이름과 그의 사상을 짝대기로 연결하는 듯한 그런 공부를 했었다.

그런 건 결국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고, 여전히 난 철학 관련 서적을 보면 읽고 싶은 생각보다는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고 있다. 읽어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강요때문도 아니고 내가 다시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때문만도 아니다. 그저 독서의 폭을 넓히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 불과하다. 그래서 난 철학자 한 사람의 책에 대한 책보다 다양한 사상가의 다양한 생각이 담긴 책을 좋아한다. 그런 책이 받이들이는 입장에서는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예전에 공부했던 서양철학사랑 다를 게 없을 것 같지만, 지금 이렇게 읽는 것에 훨씬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머리에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나의 필요에 꼭 들어맞는 책이라 할 수 있었다. 책은 3부로 나뉜다. 첫번째 이야기는 개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이다. 학창시절 한문시간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공부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파트가 '수신(修身)'에 대한 이야기란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 중심을 잡느냐에 따라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중심이 정확하게 잡힌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어'라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건 스스로의 중심을 잘못잡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 페르소나를 벗어버린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찾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하지만 자신만을 들여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도 바른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두번째 파트가 바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을 공유하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레 포기할 수는 없다. 사회는 유기적인 존재이다. 나와 타인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배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 올바른 관계는 바로 그런 것에서 출발한다.

마지막 장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넘어 사회적인 맥락을 다루는 장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함을 발생시켰고,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와 부자의 격차도 커져만 간다. 또한 민주주의의 원래 이념은 조금씩 무너져내려 올바른 민주주의 풍토가 제대로 정착된 곳을 찾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변형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소기의 목적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지독한 개인주의성향은 이런 것에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오히려 고통을 잊기 위해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소비와 향락, 말초적인 즐거움은 잠시동안 고통을 잊게 하겠지만 결국 더 큰 고통을 가져올 뿐이다. 

정치와 사회는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특정한 누군가가 지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이야말로 사회와 사회구성원간의 올바른 소통이 필요할 때다. 정부와 국민의 지속가능성한 소통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정부를 보면 국민들의 의견에 대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지만 정책적인 면에서는 독불장군처럼 수행한다. 국민들은 지금 처한 자신의 고통에 빠져 입을 다물고 더욱 자신 속으로만 파고들어 간다. 올바른 소통이 없다는 증거다. 국민없는 나라는 없다. 우리정부는 언제쯤 이걸 깨닫게 될까. 

자신을 똑바로 마주보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 역시 어렵고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해 버리는 건 쉽지만, 그후의 미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고민해야 한다. 고민하는 힘, 이것이 바로 철학이 아닐까.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과 세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바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철학자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온 사람들이고, 그들의 사상은 그 고민 속에 탄생한 것이다. 인간 세상의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을지라도 그것을 구성하는 근본인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들이 고민해 온 것들을 통해 나와 타인과 세상과의 올바른 소통의 길을 찾을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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