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원작, 시오즈카 마코토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사카 코타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라서 열 몇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 그중 읽은 건 반도 안된다, 씁쓸 - 이 만화의 원작인 <종말의 바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안그래도 요즘 소설에 통 손이 안가서 미적미적하면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데, 잘 되었다 싶어서 질렀달까. 만화화한 소설의 경우 오리지널 스토리가 생기기도 하는데, 원작과는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하긴 하다.

종말의 바보 만화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연작단편인데, 마지막 단편에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다 나오더이다. 요런 게 연작의 재미겠지? 각설하고.

이 작품은 지구의 멸망을 앞둔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그리고 있다. 8년전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보고가 있은 후 5년이 지났다. 앞으로 남은 3년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보내기를 원할까.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난 어떻게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들었던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행성 충돌이란 건 단순한 SF적인 설정이 아니라 지구의 과거에도 소행성 충돌이 있었으니 언젠가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공룡을 멸종시켰던 소행성 충돌은 지구까지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오는 소행성은 지구를 아예 멸망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도 처음으로 이 소식을 들은 날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인간 세상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범죄가 빈발하고 질서가 무너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설정을 가진다. 또한 지구 멸망의 날을 너무나도 두려워한 나머지 자살을 한 사람들도 속출했다.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종말의 바보>는 해체된 한 가정이 다시금 하나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에 대한 지독한 편애로 가득했던 가장과 집을 나간 딸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딸은 성공작, 아들은 실패작이라 생각했다. 결국 아들은 자살하고, 딸은 집을 나가버리고. 가족은 분열되고 말았다. 3년이란 시간이 남은 지금, 자식과 부모는 화해를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사과를 한다. 아직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기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칩거의 맥주>는 선정적 보도만을 일삼던 한 방송인과 그에 복수하려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피해자를 벼랑끝으로 몰아넣었고 피해자를 비롯 어머니마저 자살한다. 당연히 이들의 남은 가족에겐 복수심만이 남을 수 밖에. 소행성에 죽기 전 내가 죽이겠다고 선언한 형제의 선택은?

<동면의 소녀>는 부모가 동반자살하고 혼자 남은 소녀의 이야기이다. 나름대로 그날에 대비하면서 살아 오던 그녀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과연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을까.

<강철의 킥복서>는 지구멸망 소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세상이 갑자기 끝난다고 해서 습관처럼 늘 해오던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런 게 바로 치열함이 아닐까.

<천체의 밤>은 오랜만에 재회한 대학 동기간의 이야기이다. 야베와 치즈루의 궤도를 살짝 바꿔준 니노미야. 그는 별에만 미쳐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이랄까. 난 니노미야의 "소행성 충돌 따윈… 너무 앞지른 과대 발표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모두가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고 말았지…. 그래서… 떨어지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멍해졌다. 이런 예를 들기는 좀 우습지만, 수능시험날이 유독 추운 이유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하나의 에너지로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이 가진 힘이랄까. 니노미야는 바로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해의 망루>는 종말론이 퍼지자 선택받은 자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신흥종교단체와 비교적 종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대비된다. 믿으면 선택받는 자가 될 수 있다. 그 대신 믿지 않으면 멸망뿐이다, 라는 이분론적인 이야기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나약함이 그대로 표현되니까. 마냥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도 싫지만 선택받기만을 기다린다니. 삶이란 건 살기 위해 사는 거지, 죽는 날을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말처럼 "인간이란 죽어라 발버둥을 쳐서라도 필사적으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라는 것처럼.

비록 자신이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알더라도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 자신이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아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채 죽음이 닥치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일까. 난 그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아가는 동안은 필사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화는 오리지널 스토리도 있고, 책 내용을 다 수록하지 못했다고 하니 언젠가는 기필코, 소설을 읽어 봐야겠다. 소설이 원작인 만화의 경우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는 작품도 많지만, 의외로 괜찮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있는데,『종말의 바보』는 후자가 아닐까 싶다. 만화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매력이 담뿍 묻어나는 작품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