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개
쿠사마 사카에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이 작가 작품을 오랜만에 읽긴 했나 보다. 쿠니에다 사이카와 헷갈렸으니. 표지 그림을 언뜻 보고는 쿠니에다 사이카라고 착각을 했던 거다. 근데 책을 받아 보니 쿠사마 사카에. 호오라, 이거 횡재한 기분이었달까.『꿈꾸는 성좌』나『육식 동물의 테이블 매너』를 보면서 푹 빠진 작가였는데, 너무 오랜만이어서 잠시 헷갈린 것 뿐. 어쨌거나, 반가워요. 작가님!

제목에 '개'라는 표현이 있어서, 혹시나 성격이 개차반인 캐릭터가 등장하는가 하고 살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무척 따스한 느낌이었달까. 아흐.. 이러니 내가 BL을 못끊어. (물론 끊을 생각은 전혀 없다. 기복이 좀 심할 뿐) 중년의 샐러리맨 아저씨와 골동품 가게를 하는 총각의 이야기가 아주 포근포근했다.

목차를 보면 단편집인가 싶지만 장편이다. 중년의 샐러리맨(이혼했음) 아저씨인 시노다와 담배가게 겸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사쿠라의 첫만남은 조금 기묘했다. 어쩌면 그날 시노다가 안경을 착용한 채로 길을 걸었더라면 둘은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시노다 우연히 걸어 들어간 골목 끝에 있던 골동품 가게는 그날 이후 맨정신에는 찾기 힘들었으니까. 이런 것도 인연이지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시노다는 아사쿠라의 가게의 편안함에 끌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도 잘 맞아 시노다는 아사쿠라의 가게에 빈번히 들리게 된다. 때로는 도시락도 싸오는 등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랄까. 하지만 이런 다정함과 깊은 배려가 대학시절의 이별과 지금의 이혼이란 상황을 만들었으니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아사쿠사 역시 못만나게 되었을테니, 조금은 멀리 돌아오는 길이지만 진짜 인연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원래 노말인 시노다가 게이인 아사쿠라의 마음을 눈치챈 후,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겨버린다. 만약 시노다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했더라면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은 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흘러갔겠지. 그렇다는 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고. 어차피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차이가 처음부터 존재했으니 한 번은 겪어야만 할 일이었겠지.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 두사람에게 있어 커다란 갈등은 낳지 못한다. 오히려 잔잔하고 편안하게 이 일을 풀어나간달까.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어 간다.

공수 모두 안경캐릭터. 우와아.. 이거 참... 좋다. 난 안경캐릭터 오덕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둘 다 안경캐릭터인 게 참 잘 어울렸달까. 그래도 좀 불편하시겠어요, 두 분 다. 작가 후기를 보면 공이 소녀풍의 좀 짜증나는 이미지일지도 모른다고 씌어 있는데, 절대 아니. 난 이 캐릭터 참 마음에 들었다. 조심스럽고 다정다감하며 귀여운 이미지도 있지만, 자기 의사 표현은 확실한 걸. 아, 그렇다고 선을 넘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의사 표현은 확실하다랄까. 특히 지하철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 그리고 옛 연인을 만났을 때 그런 모습이 보였었지. 이런 남자라면 든든할 것 같아.

음. 그리고 시노다씨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긴 한 상태였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조심스럽게 마음을 문을 열고 다가간달까, 그런 느낌이 팍팍 들어서 한 눈에 반했소이다. 게다가, 요리를 잘 하는 남자라니. 난 요리 잘 하는 남자도 좋아해서... (아, 이건 사적인 건데.. 참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또다시 한 걸음. 우연한 만남에서 사랑이란 감정으로 변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연인으로서 행복해진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마음이 따스해지고 충만해져가는 느낌이었다. 요즘 꽃샘추위로 많이 추웠는데, 이 작품 하나로 포근포근한 느낌이 가득이다. 따스한 작품을 원하는 사람에게 강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4-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쿠니에다 사이카랑 헤깔려요. 저는 그냥 이름이 이상하게 헷갈린다고 해야하나요.:)
요건 앞서 봤던 성냥팔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그 작품이군요. 따스한 이야기도 좋아하는데.. 이번에 쿠사마 사카에님 작품 잔뜩 사게 될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스즈야 2011-04-11 01:30   좋아요 0 | URL
오오, 교님도?? ㅎㅎㅎ
이건 엄청 따스해요. 공이 좀 소녀공인데... ㅋㅋ 그게 또 나름 귀엽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