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못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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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었다. 일단 제목이 너무 촌스러웠고, - 촌스럽기 보다는 너무 적나라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란 점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왠지 중국하면 무협지나 무협 드라마 같은 게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즉 심각하게 과장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책을 읽어가면서 처음에 가졌던 우려는 점점 가시기 시작했고, 읽으면서 책 내용에 푹 빠져 들었다. 이거 진짜 재미있다, 라는 느낌이었달까. 또한 중국인도 아닌 네덜란드인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우 재미있게 썼다는 점도 무척 신기했다.

이 책의 주인공 판관 디공은 디런지에라는 실존 인물로 당나라 시대의 인물이다. 판관하면 포청천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건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하지만 판관 포청천 드라마를 너무 오래전에 봐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건 나만 그러려나.

각설하고.
디런지에가 지방관료로 근무하는 베이저우에서 수상쩍은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난다. 첫번째 사건은 골동품 장수의 집에서 머리 잘린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고, 두번째 사건은 무술의 달인 란사부가 목욕탕에서 독살된 사건이다. 

첫번째 사건인 머리 잘린 시신 사건은 남편이 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당시 출타중이었던 남편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니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일까.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 일어난 두번째 사건. 두번째 사건의 경우 란사부가 칠반으로 다잉 메세지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 모양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수사에 난항이 거듭된다. 디런지에는 자신의 수하와 더불어 사건을 수사하며 용의자의 폭을 좁힌다. 일단 두 사건은 연관이 없는 사건으로 파악, 두 명의 범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사건 수사를 하던 디공의 수하가 피살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머리 잘린 시신의 경우 대부분 신원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한 트릭으로 존재한다. 이 사건의 경우 골동품 장수의 집안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시신이 골동품 장수의 아내일 것이란 추측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건 해결을 늦춰지게 만든 것이다. 요즘은 지문 확인이나 DNA검사를 하지만 당시에는 간단한 검시 정도로만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아주 적은 단서만 가지고 사건을 수사하고 추리해내는 디공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결말부를 읽으면서 앞에 나왔던 것들이 복선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 또한 매우 치밀했다.

두번째 사건의 경우 어렴풋이 여성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란사부처럼 무술의 달인을 죽인 독살이란 방법은 주로 여성이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완력면에서 뒤지기 때문에 선호하게 되는 살해 방법이 독살이 많은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란사부가 남겨놓은 칠반 다잉 메세지가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되지만,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이 정말 만만치 않은 여성이었달까. 미인계를 쓰는 건 물론이요, 6개월전 남편살해란 또다른 사건을 저질렀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성을 수사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증거불충분이란 것이었다.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살해 행각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얼마나 뻔뻔하게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강조하는지, 이제껏 악녀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고개가 휘휘 저어질 정도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재판과정에서 디공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고 결국 자신의 목숨마저도 위태로운 처지가 되지만 한 여성의 도움으로 이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하게 된다.

『쇠못살인자』는 여러 면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범인들의 살해 방식과 증거 인멸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수사과정과 공개재판이란 점이었다. 용의자를 심문하고 때로는 고문을 하기도 하는 등 요즘 법체계에서 보자면 불법이 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다 허용된 모양이다. 고문이 허락되었다는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달까. 만인이 보는 앞에서 태형을 당하는 여인이라. 하지만 그런 것도 그 여인이 저지른 끔찍한 범행에 비하면 덜 충격적이었다. 정말이지 여인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달까. 물론 그런 방법이 요즘 세상에서는 씨알도 안먹히겠지만, 이 사건이 벌어진 때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간다.

주인공 디런지에의 캐릭터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행동력은 판관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요소이겠지만 인간적인 면도 무척이나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디런지에이다. 아내가 세명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 이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 아름다운 여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면이나, 사건 해결의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거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 역시 무척 인간적인 부분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실수는 하는 법이랄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사심 한조각 용납하지 않는 냉정한 면도 있다.

그리고 당대 중국의 풍습을 묘사한 부분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녀들이 유곽으로 팔려오는 것이며, 중국 결혼 풍습에 있어 두드러진 남녀차별같은 것도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어둠과 음험함,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광기의 살인 행각. 인간은 정말이지 다양한 동기로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그것을 합리화한다. 이런 점이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닐까. 가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에게 동정이 가는 경우도 가끔씩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절대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한 사람은 정상참작이 되긴 했지만... 이 부분이 깜짝 트릭같았달까. 원제를 보니 납득이 가긴 했지만. (복수형이었어.) 

디공 시리즈 다음 작품도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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