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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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도대체 되는 일이라곤 없고,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난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정말이지 그 정도가 심해질 때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에휴, 내 팔자가 이런가 보다 하고 포기한 채 또다시 똑같은 날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카모메 식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나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핀란드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일본 식당인 카모메 식당의 주인인 사치에는 올해 서른 여덟살의 여성으로 일본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둘이서 살아왔다. 아버지는 합기도의 고수로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사는 분이다. 딱히 자신의 뜻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아버지의 말을 따르며 살아온 사치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직접 음식을 준비하게 되면서 요리에 대한 재능에 눈을 뜨게 된다. 요리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사치에는 문득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 후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핀란드로 훌쩍 떠난다.

핀란드에 와서 작은 식당을 차리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계속 이어진다. 그나마 식당을 찾아주는 건 토미라는 청년으로 일본 문화에 푹 빠진 오타쿠 청년뿐. 언젠가 손님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는 사치에는 절대 서두르지도 지레 힘빠져 하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사치에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도리란 일본인 여성과 마음이 맞아 함께 살게 되고, 미도리는 카모메 식당일을 도와주게 된다. 미도리는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직한 상태의 40대 여성이다.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는 형제들에 질려 미도리는 눈을 감고 지도에서 아무데나 짚은 곳인 핀란드로 무작정 온 것이다.

그리고 또 한명의 일본인 여성은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온 50대의 여성인 마사코이다.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마사코는 남동생이 일으킨 문제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핀란드로 여행을 오게 되었고, 마침 일본 식당인 카모메 식당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마사코는 처음에는 그저 여행객으로 머물렀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에 푹 빠져 그녀 역시 이곳에 머무르기로 한다.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이들 세 여성은 모두 평범하고 평온하지만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중 사치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핀란드로 왔지만, 나머지 두 여성은 가족 문제때문에 우연히 핀란드에 왔다가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고 또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 이들 세 여성의 공통점은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만약 일본에 그냥 머물렀다면 이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때문에 골치를 썪였을 테지만, 무모한 용기라도 낸 것이 그녀들의 삶을 바꾸었다. 물론 거기에 작은 행운이 따랐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행운도 용기있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라 생각하면 묘하게 납득이 간다.

카모메 식당은 특별한 식당은 아니지만, 점점 특별한 식당이 되어간다. 거기엔 주인 사치에의 인품이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늘 놀러 와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일본문화 오타쿠 청년 토미에게도, 사연이 있는 여인들인 미도리와 마사코에게도, 그리고 어느날부터 카모메 식당 창문을 들여다 보며 노려보다 가는 핀란드 여인에게도 친절한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대했기 때문에 카모메 식당이 특별한 식당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음식이 맛있는 곳은 많지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식당은 의외로 적다. 사치에의 식당은 음식도 맛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다. 가족조차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던 사치에나 마사코에게, 남편의 배신으로 생기를 잃고 살아가는 핀란드 여인인 리사에게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편안함과 배려심은 카모메 식당만의 특식일지도 모른다. 비록 오니기리는 핀란드인에게 인기가 없는 음식이긴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 얼굴에는 미소가 계속 떠올라 있었다. 때로는 너무나도 진지해서 웃음이 터져버리는 일본식 유머 코드에, 엉뚱한 일본 문화 오타쿠 청년 토미의 말에 큭큭 웃기도 했다. 정형화된 삶의 틀안에서 안주하고 살던 여성들이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샘이 나기도 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또다른 여인인 리사의 경우 자신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그 틀안에서 변화를 주어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다. 리사에게 있어 가장 큰 치유는 카모메 식당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고, 그들이 전해주는 따스한 마음이었다. 나의 경우 내 고향, 내 나라를 두고 떠날 깜냥도 안되고 그럴 능력도 안되는 사람인지라, 나의 경우에는 리사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위안을 얻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 대부분이 리사같은 경우가 아닐까. 

우리 삶을 살펴보면 어제의 삶이 늘 오늘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삶이 꼭 내일의 삶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늘 똑같은 삶일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면 사람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이 닥친다고 해서 계속 흔들릴 수는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달라진 인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인생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야 한다. 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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