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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2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가공의 인물인 애꾸눈 점쟁이 이시경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이시경이 실존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 포천. 포천 2막의 내용은 정도령의 협박으로 이시경이 자신의 또다른 스승 전우치를 찾는 이야기와 이시경이 왜 한쪽 눈을 잃은 애꾸눈 점쟁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막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이시경의 십대 시절의 이야기로 그가 진정한 눈을 뜨게 된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이시경은 자신의 스승 화담 서경덕과 그의 제자들이 조정의 미래를 점치는 이야기를 듣고 비서(秘書)를 훔쳐 달아나 이천년 정희량의 제자 행세를 하며 점을 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었다. 이시경은 또다른 사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등을 점치는데, 이런 점괘가 조정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이시경은 대역도죄인으로 낙인찍힌다. 결국 죄인으로 잡혀들어가게 된 이시경은 갖은 고문을 당하지만, 스승인 서경덕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만은 건진다. 하지만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맹인으로서 살아가던 이시경은 어느날 앉은뱅이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 여인을 맞은편 강가로 옮겨주게 된 후 한 쪽 눈을 뜨게 된다. 이시경이 옮겨준 여인은 다름아닌 지장보살이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인가, 자신을 위해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이시경에게 내려진 해답은 바로 이것이었던가. 어차피 스승처럼 살지는 못하니 범인으로서의 삶이 반, 점쟁이로서 세상에 보시하는 삶이 반이된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점을 치는 사람은 자신의 사주를 읽어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일은 자신의 안위나 이익보다는 세상에 보시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시경 역시 그런 연유로 자신의 앞날을 읽지 못해 죄인으로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는 과정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잔인한 일이겠지만, 그가 진정한 눈을 뜨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이 바로 이런 과정이었을지도.
이렇게 이시경은 애꾸눈 점쟁이가 되어 살아가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인 서경덕이 사망하고, 이시경은 또다른 스승인 전우치 밑에서 수행을 한다. 전우치는 소설 전우치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술이 뛰어난 인물로, 진도령 역시 전우치의 제자였으나 전우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전우치는 비록 도술을 이용해 나라를 들썩거리게 만들기는 했으나, 기본은 민초를 위하는 자였으나 정도령은 그에 욕심을 더해 백만석과 더불어 조선을 자신의 세상으로 만들려던 인물로 등장한다. 정도령은 전우치를 찾기 위해 이시경을 협박하게 되고, 이시경은 전우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소문을 흘려 놓는다. 과연 전우치는 정도령을 응징하기 위해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될까.
이 책에는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화담 서경덕과 그의 제자들을 비롯 기녀 황진이까지 많은 인물들이 실존인물이다. 또한 추노꾼같은 사람이나 광대 등도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인물 중에 고도리가 있는데, 죄인을 고문하여 거짓자백을 하게 만드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죄를 만드는 모습에 고개가 휘휘 저어지더이다. 이시경 역시 고도리의 고문으로 눈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났으니. 이 고도리가 칼을 맞고 화상을 입고도 불사신처럼 다시 살아나 자신을 응징한 추노꾼들을 몰살시켰는데, 그 후엔 어떻게 되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제발 안나오면 좋으련만. 포천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인물이 바로 고도리였으니까.
점쟁이와 점이라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로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이 딱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의 단점이라면, 이 만화는 점이란 이색적인 소재를 사용해 한층 부드럽고 재미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풍속이나 언어풍습등을 접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특히 지금은 쓰지 않는 말들이 많이 나와 그 재미를 더한다. 순우리말의 재미라고 할까.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의 대부분은 한자어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런 풍부한 우리말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점이 무척 아쉽지만, 이렇게 이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풍속과 언어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