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한쪽 눈을 뜨다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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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여중 두 개, 여고 하나가 있다. 그래서 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은데 특히 방과 후에 내려오는 아이들을 보면 재잘재잘 조잘조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쉴새없이 떠든다. 보통 적게는 2~3명, 많게는 대여섯명이 한 그룹으로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나의 중고교 시절이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저렇게 떠들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거나 서점에 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 나 역시 중고교 시절엔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거나 제과점에 햄버거를 먹으러 가거나 했으니까 말이지. 떡볶이나 햄버거 등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선생님 흉도 보고, 시험 걱정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조잘조잘 떠들다 보면 시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던 기억들.

근데, 이렇게 무리를 지어 내려오는 아이들 가운데에 가끔 혼자서 내려오는 아이가 눈에 띄곤 한다. 예전 같으면 뭔가 바쁜 일이 있어어 서두르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요즘은 혹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몇년 간 집단 따돌림 문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 나왔던 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한 여학생의 이야기였는데, 그때 당시에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역시 성적비관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적비관 문제에다 집단 따돌림 문제, 교내 폭력 문제까지 겹쳐서 큰 이슈가 되곤 한다. 도대체 아이들을 이렇게 몰아넣은 건 누구일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문제는 아이들이 중심에 있긴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원해서 만든 건 아니란 것이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남자 중학교의 한 반을 중심으로 요즘 아이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또래 집단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학습부진아 영섭, 반장이지만 자기 주변에 무관심한 태준, 그리고 자신의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선생님들을 각각 화자로 내세워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섭은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체형에다 말이나 행동도 굼뜬 구석이 있어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특히 정진과 하태석이란 아이가 중심이 되어 영섭을 괴롭히는데, 영섭은 자신이 속한 교실을 정글이 아닌 사바나로 생각하고 아이들이 괴롭힐 때마다, 혹은 괴롭히기 전에 어떤 동물로 자신을 변신시킨다. 물론 진짜 변신은 아니고, 그런 동물이 되어 스스로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영섭이는 스스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처럼 되겠는가. 처음에는 소소한 학용품 정도를 빼앗기다가 돈도 뺴앗기고, 때론 맞기도 하고, 기절놀이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등 온갖 괴롭힘을 당한다.

이렇게 늘 괴롭힘을 당하는 영섭이지만 나중에는 조금씩 반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정진 옆을 지나가면서 방귀를 뀌는 정도이지만, 나중에는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거나 교실에 소변을 보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영섭을 괴롭히던 아이들이 각서를 쓰게 된 이후에는 좀더 공격적으로 변해가게 된다. 영섭의 마음속 괴물이 한쪽 눈을 뜬 것이다.

태준은 반장자리는 맡기도 싫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반장이 되었고, 문제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영섭을 돌봐줘야 하는 처지까지 되어버린다. 자기 일도 신경 쓸게 많은데 반장으로서 해야할 일도 늘어나고, 영섭이 일까지 돌봐 줘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준은 그런 스트레스를 야동을 보는 것으로 해소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지나칠 때가 생겨 스스로도 고민중이다.
 
반장이라는 스트레스와 야동반장이라 놀려대는 정진에 대한 짜증, 야동을 끊고 싶어하면서도 성적 호기심에 야동을 끊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은 태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간다. 하지만 태준의 성격상 꾹 눌러 참고 있어 언제 폭발할지는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준은 전에 학원 친구에게 주먹을 휘둘러 코뼈를 부러뜨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태준의 마음 속 괴물은 늘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건지도 모른다.

담임 선생님은 삼십대 중반의 남자 선생님으로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예의 주시한다. 특히 영섭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신경을 많이 쓰려한다. 하지만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는 깊고 넓은 틈이 존재한다. 선생님에게 말해도 별 소용 없을 것이란 생각 혹은 선생님은 자신들에 대해, 자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랄까. 선생님은 아이들의 문제를 파악하고 자신이 해결하려고도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선생님으로서의 고민 역시 많은 것이다.

이렇듯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가득한 반에서 언제 일이 터질지 늘 가슴이 조마조마한 것은 역시 반장인 태준과 선생님이다. 태준은 영섭에게 아무리 충고를 해줘도 귓등으로 흘려듣는 듯한 태도에 짜증이 난다. 영섭 입장에서는 태준이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같은 또래 집단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영섭을 괴롭히는 것일까. 단순히 놀리기 쉬운 상대라서? 룰에 얽매인 학교 생활,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는 부모님의 공부 타령,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직 어려서 할 수 없다는 짜증과 분노 등이 잘못된 곳으로 분출된 것이 아닐까.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대들 수가 없어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장 취약한 아이를 공격하는 건 아닐까. 물론 이런 이유가 있다 해도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을 도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어른들의 사회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그리고 승자독식의 정글자본주의 사회이다. 정글은 나무가 우거져 몸을 숨길 수가 있지만, 아이들이 사는 곳은 관목과 풀만 있는 사바나다. 영섭이 몸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고, 어떻게든 몇 년을 그곳에서 버텨야 한다. 사바나에서 자라서 정글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영섭이나 태준의 마음 속에 있는 괴물은 이제 겨우 한쪽 눈을 떴을 뿐이다. 그래서 그 괴물이 두쪽 눈을 다 뜨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사람들의 마음에는 모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더 많을 뿐이라 생각한다. 나같은 경우에도 살다보면 때때로 괴물이 한쪽 눈을 뜨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금세 그 눈을 감도록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괴물이 눈을 감고 있도록 하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두쪽 눈을 다 뜬 괴물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하기에 괴물이 한쪽 눈을 뜨려하는 순간, 혹은 한쪽 눈을 떴다 해도 그것을 금세 감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영섭과 태준이 자신의 마음속 괴물의 눈을 다 감도록 하든, 다 뜨게 만들든 결국 그건 자신들의 몫이지만, 아직 아이들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올바른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은 너무 극한으로 몰아붙여지고 있다. 어른들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공부를 강요하고,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은 눌러 덮어야 하며, 어른들이 만든 룰안에서만 살아가야 하고, 어른들의 판단에만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른들은 '알아서 잘 하라'는 말만을 할 뿐이다. 

어른들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를 쉽게 잊어버리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틈바구니가 너무나도 깊어서 서로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 이 책은 집단따돌림 문제뿐만 아니라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비롯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의 입장과 어른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서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상황에서는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다. 어른들은 자신을 무조건 우위에만 놓지 말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영섭의 어머니나 태준의 어머니처럼 무조건 몰아붙인다면 아이들은 입을 다물 뿐이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상이 어른들의 세상과는 다른 룰이 있다는 걸, 그리고 아이들의 세상에서만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속 괴물을 더욱 크게 키우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속 괴물이 두눈을 다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이 세상에는 괴물같은 어른들이 많지만, 아이들마저 괴물로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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